주목할 대목은 이같은 실적 발표가 이뤄진 지난달 22일 현대건설의 주가가 전날 종가(2만6200원) 대비 2250원 오른 2만 8450원에 거래를 마친 데 이어 이달 6일 정오 기준 3만1600원까지 올라섰다는 점이다. 이번 실적발표가 ‘큰 욕조에서 묵은 때를 씻어낸다’는 뜻의 ‘빅배스’ 전략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는 이유다. 지난해 말 현대건설은 이한우 대표를, 현대엔지니어링은 주우정 대표를 각각 선임한 만큼 새 출발과 함께 기존 손실을 최대한 털어내고 향후 수익성 및 재무건전성 개선에 집중하겠다는 포석인 셈이다.
수장 교체를 통해 전기 마련에 나선 곳은 비단 현대건설·현대엔지니어링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국내 10대 건설사 가운데 무려 8곳이 최고경영자(CEO)를 새로 선임, 최근 건설업계를 둘러싼 위기 극복에 팔을 걷어붙인 모양새다. 한 업종 수위권 업체들의 대표가 한꺼번에 대대적으로 교체되는 건 흔치 않은 사례로, 그만큼 국내 건설업계를 둘러싼 불확실성과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극심하다는 얘기다. 10대 건설사 CEO 면면 재무건전성 확보와 리스크 관리에 능통한 ‘재무통’과 수익성을 담보한 일감 확보 능력을 갖춘 ‘주택통’이 전면에 포진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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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현대엔지니어링의 이번 빅배스 전략은 업계 내 재무통으로 꼽히는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신임 대표의 결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강대 경제학과 출신인 주 대표는 현대제철에서 경영관리실장, 기아에서 재경본부장을 지낸 재무통으로, 지난해 12월 현대엔지니어링 대표로 선임됐다.
다른 주요 건설사들 역시 재무통 CEO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지방 주택사업 미분양과 공사비 급등에 따른 미청구공사 규모 등이 늘면서 각 건설사의 현금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 또한 여전해서다.
정경구 HDC현대산업개발 대표와 김형근 SK에코플랜트 대표도 재무통으로 이름 난 CEO들이다. 서울대 법과대학 출신인 정 대표는 HDC현대산업개발 경영기획본부장, HDC자산운용 대표를 역임했으며 지난해 12월부터 HDC현대산업개발을 이끌게 됐다. 김형근 SK에코플랜트 대표 역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SK그룹 내 알아주는 재무 전문가다. 지난해 6월 대표로 신규 선임되기 전 SK E&S에서 재무부문장을 맡은 인물이다.
롯데건설은 2022년 레고랜드 사태로 알려진 ‘강원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사건’으로 부동산 PF 유동성 위기가 불거진 당시 선임된 박현철 대표가 지난해 말 연임을 확정했다. 직전 롯데지주 경영개선실장을 맡아 온 롯데그룹 대표 재무 전문가로, 롯데건설 재무건전성 확보에 지속 공을 들일 전망이다.
◇일감 때 놓치면 바로 공백…‘주택통’이 챙긴다
10대 건설사 중 주택통을 수장으로 둔 건설사도 삼성물산을 비롯해 현대건설, DL이앤씨, 포스코이앤씨 등 4곳에 이른다. 제때 사업성 좋은 일감을 확보하지 못하면 곧장 사업 공백과 부실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이들 CEO를 내세우게 된 배경으로 해석된다.
우선 2021년 3월부터 삼성물산을 이끌고 있는 오세철 대표는 지난해 말 연임이 확정, 2027년 3월까지 임기가 늘었다. 최근 서울 강북권 재개발 최대어라 불린 총 공사비 1조 5695억원 규모 한남4구역 시공권을 따내는 등 알짜 사업을 선별해 수주하는 데에 십분 역량을 발휘하면서다.
DL이앤씨와 포스코이앤씨 역시 지난해 말 건설사 본질에 집중한 인사를 단행했다. 그간 비(非)건설인 출신 CEO를 세 차례 연속 선임했던 DL이앤씨는 지난해 8월 박상신 대표를 구원투수로 등판시켰다. 1985년 DL건설의 전신인 삼호에 입사한 뒤 주택 사업에서만 30년 넘게 몸담은 베테랑이다. 재무통이 이끌던 포스코이앤씨도 지난해 12월 주택통 정희민 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인하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정 대표는 줄곧 건축사업본부에서 중책을 맡아온 인물이다.
◇오너가 직접 챙긴다…‘책임경영’ 두 건설사 어디
대우건설과 GS건설의 경우 오너일가가 지난해 대표직에 오르면서 업계 이목을 끌기도 했다. 위기의 때 ‘책임경영’을 강화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먼저 지난해 12월 취임한 김보현 대우건설 대표는 정창선 중흥그룹 회장의 사위다. 2021년 중흥그룹의 대우건설 인수단장을 맡아 합병 과정을 총괄했고 이후 고문과 총괄부사장을 연이어 맡으며 회사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왔다. 공군사관학교 36기로 32년간 공군에서 복무하다 2020년 1월 준장으로 예편했다.
2005년 입사해 GS건설에서 꾸준히 경영수업을 받아온 허윤홍 대표는 2023년 말 CEO 자리에 오른 뒤 지난해 3월 대표로 공식 선임됐다.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GS건설에서 플랜트 관련 부서를 거쳐 신사업부문에 몸담았으며 올해 아파트 브랜드 ‘자이(xi)’ 리브랜딩에 초점을 맞춰 책임경영을 펼칠 전망이다. 허 대표는 1979년생 ‘젊은피’로도 이목을 끈다. 올해 10대 건설사를 이끌 CEO 가운데 가장 젊은 나이로, 이외에도 1970년생으로 이한우 대표와 김형근 대표가 젊은 피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