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화폭에 드리운 양조위의 고뇌..'해피투게더' 감성 고스란히

김은비 기자I 2021.06.21 06:30:01

리안갤러리 서울 '엘리자베스 페이튼 개인전'
얼굴 그대로 보다 느낌·감정 표현 중점
페인팅· 드로잉· 모노타입 등 11점 선봬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홍콩 유명 배우 양조위의 얼굴이 가로 27cm, 세로 35cm 가량의 작은 화폭에 담겼다. 투박한 붓질로 눈을 지그시 감은 양조위의 옆모습이 그려져 있다. 형체가 뚜렷하지 않지만, 작품 앞에 서는 순간 그 얼굴에서 짙은 고통과 고뇌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홍콩의 지구 반대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는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Happy Together)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해 깊은 인상을 남겼던 양조위의 모습이었다. 작품은 미국 초상화가 엘리자베스 페이튼(56)이 그린 ‘토니 양조위’(Tony Leung Chiu-Wai )다.

엘리자베스 페이튼 ‘토니 양조위’(Tony Leung Chiu-wai·2021), 보드에 유화, 35.6 x 27.9 x 2.7 cm(사진=ⓒ Elizabeth Peyton;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리안갤러리 서울은 지난 15일부터 페이튼의 국내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페이튼은 유명인사, 역사적인 인물부터 주변 인물까지 직관적이고도 감성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나폴레옹(Napoleon), 엘리자베스 1세(Queen Elizabeth I)부터 존 레논(John Lennon), 앤디 워홀(Andy Warhol) 등 다양한 분야 아티스트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왔다. 페이튼은 이번 전시에서 신작을 포함한 페인팅, 드로잉, 모노타입 작품 총 11점을 선보인다.

페이튼의 작품 크기는 대부분 손바닥 크기로 작은 편이다. 관람객과 작품 속 인물간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의도한 것이다. 하지만 작품이 자아내는 아우라는 대작 못지않다. 안혜경 리안갤러리 서울 대표는 “수년 전 ‘폴 메카트니’의 그림을 접했는데 강렬함이 웬만한 큰 그림을 능가했다”고 회상했다. 작품 가격도 어마어마하다. 세계 시장에서 그의 작품은 적게는 수억부터 수십억원을 호가한다. 그럼에도 작품이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안 대표 역시 전시를 개최하기 위해 3년 전부터 그가 전속작가로 있는 영국 런던의 사디콜(Sadie Coles HQ))과 접촉을 해왔다. 작가가 직접 갤러리를 방문해 전시 공간을 둘러본 후 어렵게 작품을 모아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

페이튼은 대중매체에 실린 유명인들의 사진을 참고해서 초상화를 그리지만 원본 사진과는 완전히 다르게 인물을 재해석한다. 전시에 앞서 그는 갤러리 측에 “회화는 순간순간의 시간의 축적이며, 그 자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건져내는 작업”이라며 “다시 보고 그리는 건데 내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고 싶은 대로 표현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작품들은 누구를 그린 것인지 이름을 듣기 전에 알아차리기 힘들게 불명확하다. 얼굴을 그대로 재현하기 보다는 인물의 느낌과 감정을 직관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데 중점을 둔 것이다.

페이튼의 작품은 세밀한 묘사보다는 화려한 색감과 거침없는 붓터치가 특징이다. 다루는 매체도 유화, 수채화, 드로잉, 판화, 사진 등 다양하다. 수채화에는 물감의 흐름이 그대로 남아있고, 유화 작품도 얇은 붓 터치로 수채화 같은 느낌을 풍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수채화 작업 ‘라라(Lara Sturgis March ’(2021)가 대표적이다. 작품은 작가의 스튜디오 어시스턴를 그린 작품이다. 이 외에도 전통 기법과 본인만의 현대적 기법을 혼합한 모노타입 작품 3점, 본인의 모습을 담은 자화상 ‘엘리자베스’(Elizabeth) 등 작가가 엄선한 작품을 선보인다.

페이튼은 사람의 얼굴에는 시간, 역사, 개성 등 많은 것이 담겨있다고 말한다. 홍세림 리안갤러리 큐레이터는 “페이튼의 초상화는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붓질로 만들어진 완벽한 세계를 보고 있는 것”이라며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페이튼의 신작들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고 전했다. 전시는 7월 31일까지.

엘리자베스 페이튼 ‘라라’(Lara Sturgis March·2021), 종이에 수채, 35.9 x 26 cm, (사진=ⓒ Elizabeth Peyton; courtesy Sadie Coles HQ, 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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