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가 전한 지난 9월 10일 리비아 대홍수의 참상이다. 사이클론 ‘다니엘’이 리비아를 지나면서 동부지역 항구도시 데르나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데르나는 연간 강우량이 200mm에 불과한 지역인데 24시간 동안 414mm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저수용량 1800만㎥의 데르나 댐, 150만㎥의 만수르 댐 등 두 댐은 허무하게 무너져내렸다.
역대급 대참사의 1차 원인은 물론 사이클론 ‘다니엘’이 몰고 온 집중호우이다. 하지만 더 큰 원인은 갈수록 빠르게 다가오는 기상 위기와 10여 년의 긴 내전으로 인해 재난 예측과 경보·대피 체계의 부실, 그리고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 부재이다.
리비아는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 여파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뒤 무장세력이 난립하면서 내전이 이어져 왔다. 사회기반시설 건설이나 기후 위기 대비는 당장 눈앞 총구의 위협 아래선 꿈도 못 꿀 이야기일 것이다. ‘다니엘’이 대홍수 일주일 전부터 지중해를 가로지르며 여러 나라를 강타했지만, 치명적 인명 피해가 발생한 곳은 리비아뿐이라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지구촌 저편 나라의 비극이지만 과연 우리는 “그저 남의 일”이라고 스쳐 지날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상기후의 경험은 이제 우리나라에서 자주 겪는 일상사가 되고 있다. 가뭄과 홍수의 경우 특히 그렇다. 포항 냉천 범람으로 인한 피해, 오송 지하차도 침수, 괴산댐 월류, 호남지역의 극심한 가뭄 등은 우리나라가 더 이상 살기좋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아니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오송 지하차도 참사의 경우 리비아의 경우처럼 대피 안내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비극을 키웠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70% 정도의 비가 우기철에 집중돼 있다. 그래서 극심한 가뭄이 있는 곳엔 반드시 대홍수가 발생하게 돼 있다. 지역간, 수계간 연계와 물 그릇 확보를 그동안 입이 닳도록 강조한 이유다.
다행히 환경부가 국가하천 19곳 준설, 중·소규모 신규 댐 건설을 비롯해 농업용 저수지 확대, 다목적댐 상류에 보조댐을 건설하고, 댐 리모델링 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 2012년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기초·지방자치단체도 댐을 건설할 수 있게 됐고 이에 따라 봉화댐과 원주천댐이 건설 중이다. 하지만 반드시 이번 리비아 데르나, 만수르 두 댐의 붕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댐은 견딜 수 있는 강수 한계를 넘어서면 무너진다. 그리고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는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낳는다.
우리나라 댐 중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팔당댐은 건설한 지 50여 년이 지났다. 당초 계획 홍수량을 3만4400㎥/sec로 국토교통부(당시 건설부)의 허가를 받았으나, 실제는 2만8500㎥/sec로 허가조건보다 작게 건설했다.
1990년 9월 9일부터 사흘간 팔당수계 중부지방에 기습폭우가 쏟아졌다. 이때 계획홍수위(EL.27m)를 초과했고, 1972년도에는 계획홍수위를 1.5m 초과했다. 1984년 9월 2일 2만 8504㎥/s 방류, 1990년 9월 11일 3만 800㎥/s방류는 실제로 건설된 계획 홍수량보다 많은 양이 방류된 것이다. 즉 명백한 ‘월류’다. 구조상 취약점이 많은 팔당댐 대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은 팔당댐만이 아니다.
이상기후는 우리에게 지금까지의 생각을 모두 바꾸라고 말한다. 이상기후 이전의 잣대로 이상기후 이후의 미래를 예측해선 안 된다.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둔 혁명적인 물관리 시스템이 국가적 재앙을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