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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음악가는 음악을 이용해 자신을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면 안 된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경기필)와 함께 아시아 데뷔 무대에 나서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엘사 드레이지(28)는“연주가나 지휘자, 성악가가 자아도취에 빠진 나머지 관객이 음악을 듣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17일 서울 중구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드레이지의 첫 인상은 ‘자연스러움’이었다. 그는 “나는 성공을 위해 중요한 사람에게 잘 보이는 걸 잘 하지 못한다”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걸 가장 잘 하기에 성악가로서도 나만의 목소리를 그대로 관객에게 들려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자연스러움은 드레이지가 클래식계에서 자신만의 매력으로 추구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그는 “클래식 음악은 이해가 필요한 ‘닫힌 세계’지만 모든 대중이 이를 이해하기란 어렵다”며 “나는 (클래식이 낯선) 젊은 관객에게 어필하기 위해 화려하지 않은 옷과 과하지 않은 노래 테크닉 등 자연스러움으로 다가가려 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출신인 엘사 드레이지는 현재 유럽에서 떠오르고 있는 ‘라이징 스타’다. 세계 최고의 성악 콩쿠르 중 하나로 플라시도 도밍고가 만든 ‘오페랄리아’에서 2016년 최고의 여성가수로 1등상을 수상했다.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베를린·잘츠부르크·루체른·파리에서 데뷔무대를 가져 클래식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드레이지가 한국을 찾은 이유는 경기필과 함께 하는 공연 ‘마스터시리즈Ⅹ-마시모 자네티 & 엘사 드레이지’(19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20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를 위해서다.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자 아시아 데뷔 무대이기도 하다. 그는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로부터 경기필이 젊은 오케스트라라는 이야기를 들어 그 젊음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고 공연을 앞둔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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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은 드레이지가 경기필 상임 지휘자 마시모 자네티와 베를린슈타츠오퍼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만난 것이 인연이 됐다. 드레이지는 “대부분의 지휘자는 성악가를 좋아하지 않는데 자네티는 성악가를 아끼면서 편안하게 대해줬다”며 “베를린슈타츠오퍼에서의 6회 공연이 매번 특별한 순간이었기에 언젠가 자네티와 다시 공연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공연 프로그램도 자네티와 이메일과 메신저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선정했다. 1부에서는 슈트라우스 가곡 ‘아폴로 여사제의 노래’와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들려준다. 말러의 교향곡 4번을 선보이는 2부에서는 4악장에서 드레이지가 출연해 천상의 삶에 관한 노래를 부를 예정이다. 드레이지는 “슈트라우스가 젊은 시절 작곡한 ‘아폴로 여사제의 노래’와 말년에 작곡한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함께 선보여 기분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클래식 성악 중에서도 소프라노는 유독 생명력이 짧은 분야다. 뛰어난 실력으로 유명세를 타다가도 더 뛰어난 실력의 젊은 소프라노가 등장하면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드레이지는 “처음 배우는 자세로 실력을 발전시키는 것이 나의 도전 과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의 목소리는 나이가 들면서 변한다”며 “언젠가는 고속도로를 최고속으로 달리는 듯한 느낌을 표현해야 하는 오페라 ‘살로메’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한국 문화는 낯설지 않다. 특히 한국영화에 관심이 많다. 드레이지는 “최근에도 ‘아가씨’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등의 영화를 인상 깊게 봤다”며 “한국은 나무가 많으면서 고층빌딩과 저층빌딩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이 매우 이국적으로 다가와 색다른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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