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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둥성)=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한반도 서해의 섬들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날 좋은 아침이면 바다 건너 닭 울음소리가 들려온다는 것이다. 그 닭이 우는 곳이 바로 중국의 산둥반도다. 산둥반도를 품고 있는 산둥성은 한국에서 배로 닿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중국 땅이다. 최단 직선거리로 400㎞ 남짓이다. 산둥성의 면적은 15만 7000㎦로 남한보다 약 1.5배 정도 넓다. 지역의 70%가 평지다. 70%가 산지인 우리나라에 비해 산이 적다. 그럼에도 산둥성에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산이 두 곳 있다. 바로 맥주로 유명한 칭다오(청도)시 북쪽에 있는 노산과 산둥성 내륙인 타이안(태안)시에 있는 태산이다. 노산은 한국의 민속신앙에 영향을 많이 끼친 도교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태산은 조선 중기 양사언의 시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의 바로 그 산이다. 지난달 인천에서 배를 타고 두 산을 다녀왔다.
△노산에 숨어 속세를 잊어볼까
인천항에서 칭다오행 3만t 급 카페리 뉴골든브릿지 5호를 타고 출발한 건 오후 6시. 항해거리로 544㎞ 떨어진 칭다오항에 도착한 시간은 다음날 오전 9시쯤이었다. 배가 입항하기 한 시간 전 쯤 갑판에 나와 망원경으로 둘러보니 고층건물이 성벽처럼 해변을 둘러싸고 있는 칭다오시가 보였다. 시선을 북쪽으로 돌리자 서쪽부터 이어온 산맥 하나가 바다를 앞두고 멈춰 있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바로 노산(중국명 라오산)이었다.
높이로 치자면 명함을 내밀기 멋쩍을 정도. 노산은 해발 1132m로 한국의 치악산(1288m)보다 낮다. 그럼에도 예로부터 ‘해상명산제일’로 불렸다. 1만 8000㎞에 이르는 중국의 해안가의 산 중 가장 높기 때문이다. 칭다오항에서 노산까지는 버스로 1시간 남짓 걸린다. 버스가 닿은 곳은 노산의 9개 풍경구 가운데 계곡의 물줄기가 풍부하기로 소문난 북구수다. 하지만 지난 봄 가뭄 탓에 예년에 비해 계곡의 수량이 많지 않다는 게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노산 줄기에서 솟아나는 풍부한 물은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칭다오맥주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칭다오는 청나라 말기부터 1922년까지 독일의 조차지(합의에 따라 어떤 나라가 다른 국가에 빌려준 땅)였다. 당시 독일 기술자들은 칭다오에 맥주공장을 세웠다. 그러곤 가장 중요한 원료인 물은 노산에서 가져왔다. 현재도 노산의 광천수로 맥주를 만드는 칭다오시의 칭다오맥주가 중국의 다른 성에서 나오는 칭다오맥주에 비해 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노산 북구수 입구에 도착해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노산에는 도교 사원이 청나라 때까지만 해도 9곳에 달했고 수천명의 도인이 곳곳의 동굴에서 수행을 했다고 한다. 도교 사원과 도인이 많았던 이유는 바다에서 융기한 화강암으로 이뤄진 노산 자체의 기가 셌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동안 노산 내 많은 도교 사원을 파괴하는 바람에 암벽에 새긴 글귀나 산 입구의 팔괘 문양 외에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일정 탓에 노산의 정상을 밟지 못하고 중간 즈음에서 돌아 나왔다. 가파르지 않은 등산길은 얼핏 북한산 구기동 계곡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만큼 한국 사람에게 낯설지 않다. 당나라의 시인 이백은 노산에 오른 뒤 ‘기왕옥산인맹대융’(寄王屋山人孟大融)이란 시를 남겨 노산이 준 감흥을 이렇게 노래했다. “선약을 구해 바람처럼 구름마차 위에 오르리라/ 도인을 따라 하늘에 올라 한가로이 신선과 함께 떨어진 꽃이나 쓸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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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에 올라 천하를 얻을까
산둥성 내륙의 타이안시에 자리 잡은 태산(중국명 타이안산)은 중국의 오악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오악은 서쪽으로 화산, 남쪽으로 형산, 북쪽으로 항산, 중간의 숭산, 동쪽의 태산을 일컫는다. 산둥성 곡부 출신인 공자는 “등태산 소천하”(登泰山 小天下)라고 했다.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다는 뜻이다. 당나라 시인 두보는 태산을 바라보며 “반드시 정상에 올라 뭇산들이 작은 것을 한 번 내려다보리라”고 적기도 했다.
이러한 명성과는 달리 막상 해발 1535m인 태산의 높이를 알고 나면 의아하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 오대산(1563m)보다 낮은 산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높다’고 했나. 하지만 산둥성 일대의 넓은 들판 가운데 우뚝 솟은 태산은 옛날 사람들이 보기에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산이었을 것이다. 태산이 오악 중 가장 으뜸인 이유는 황제가 직접 산 정상에 올라 봉선의식을 지낸 곳이기 때문이다. 봉선의식은 하늘의 아들인 ‘천자’라 칭하는 황제가 하늘에 제를 올려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의식이다. 진시황을 비롯해 72명의 황제가 태산에 올라 봉선의식을 거행했다. 덕분에 태산 곳곳에는 문화유적이 산재한다. 유네스코는 1987년 태산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중국에서 가장 빨랐다.
칭다오에서 버스로 약 5시간 거리인 태산은 평일 오후에도 관광객이 많았다. 노산이 신선이 놀듯 한가한 분위기였던 데 반해 태산은 북적거리는 시장통 같았다. 중국인에게 각별한 의미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산 밑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20여분 간 굽이굽이 돌아 중천문까지 오르면 태산의 상징인 ‘십팔반’과 마주한다. 십팔반은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 이어진 계단길. 63빌딩 1.5배 높이인 약 400m의 가파른 절벽에 1633개의 계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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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를 타면 10분 남짓. 직접 걸어 오르면 두 시간여. 만약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태산 입구에서부터 중천문까지 오르려면 6000여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산허리를 휘돌며 오르는 숲길이 대부분인 한국의 산에서는 보기 힘든 등산길이다. 계단이 놓인 이유는 단순하다. 황제를 태운 가마가 태산 정상까지 닿기 위해서다. 이제 그 길은 셔틀버스와 케이블카 요금을 아끼기 위한 중국 서민으로 북적인다. 과거에는 신분이, 지금은 자본이 가른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남천문부터는 천가라 불리는 산정 저잣거리를 지나 정상인 옥황정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20여분. 옥황정에 닿기 전에는 도교의 유명한 궁관인 벽하사에 닿는다. 태산의 여신 벽하원군을 모신 사당이다. 이곳을 지나 당 현종을 비롯해 역대 황제들이 제사내용을 돌에 새긴 대관봉을 거치면 태산의 정상 옥황정이 나온다. 옥황정은 40~50평 남짓 되는 건물로 마당에는 ‘태산극정 1545’라고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바로 뒤편 사당이 황제들이 제사를 올리던 곳이다. 태산극정 비석 둘레의 철망에는 자물쇠가 빼곡히 걸려 있고 향을 피우며 복을 발원하는 등산객들로 북적거린다. 옥황정 옆 난간으로 가면 산의 물결이 구름을 헤치고 일렁인다. 동쪽으로 뻗어가는 태산의 산줄기를 바라다보면 문득 중국에서 왜 우리 땅을 금수강산이라 칭했는지,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발해만과 황해를 건너 바다의 동쪽으로 사신을 보냈는지 얼추 짐작할 수 있다.
태산에는 이른바 ‘한국길’도 있다. 계단을 싫어하는 한국 등산객을 위해 태산 동남쪽 4시 방향으로 흙길과 바윗길로 된 등산로를 따로 만들어 2013년 개통했다. 직구저수지∼칼바위능선∼태평대∼옥황정으로 이어지는 약 4㎞ 거리다. 단 한국길을 이용할 때는 셔틀버스, 케이블카 이용과 달리 등산화와 장갑 등 기본적인 등산장비 및 물과 간식 등이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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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길
인천에서 칭다오까지 위동항운의 카페리 뉴골든브릿지 5호가 매주 3회 운항한다. 화요일과 목요일, 토요일 인천항 출발이다. 조수간만의 차이에 따라 15~17시간이 걸린다. 편도가격은 12만~18만원. 단체여행객에는 할인혜택이 있다. 홈페이지(www.weidong.com)에 노산과 태산을 아우르는 여행상품이 자세히 나온다(032-770-8000).
△먹을거리
칭다오의 가장 유명한 먹을거리는 단연 ‘칭다오맥주’다. 칭다오시내 맥주박물관에 가면 1903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칭다오맥주의 제조과정을 견학할 수 있다. 박물관 관람객에게만 제공하는 칭다오맥주 원액 한 잔도 시음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흔히 마실 수 있는 ‘라거맥주’지만 칭다오맥주의 원액이 주는 짜릿하고 시원한 청량감과는 비교가 안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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