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회생이 최우선"…日서 민간 중심 경영개선 컨설팅

김영환 기자I 2025.01.31 05:35:02

[갈 길 먼 제3자 구조조정]②한해 5000여건 상담…민간에 구조조정 맡긴 일본
코로나 팬데믹 시기 중기활성화협의회서 약 1만건 상담
2003년 2월부터 약 5만건 이상 상담을 기록하면서 구조조정 안정화 이끌어
미·EU도 민간 중심 구조조정 활발…"한국도 전문인력 양성 필요"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일본에서 중화요리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는 A사는 연매출 5억엔(46억 6815만원)을 꾸준히 기록했지만 코로나 팬데믹 영향으로 매출이 급감했다. 코로나 직전 개점한 새 점포는 집객이 되지 않았다. 차입을 통해 출점을 하다보니 자산 중 채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높았다. 구조조정을 결심한 A사 경영진은 ‘중소기업활성화협의회’(협의회)를 방문해 컨설턴트로부터 본사 경비 삭감 및 원가율 높은 상품 배제 등 비용개선 컨설팅을 받았다. 이와 동시에 신규자금 3000만엔(약 2억 8029만원)을 수혈받으면서 기존 차입금 5000만엔(약 4억 6715만원)에 대해 후순위대출로 차환했다. 구조조정 개선 노력을 본 기존 금융기관은 2000만엔(약 1억 8686만원)의 신규자금도 빌려줬다.

◇日, 20여년전부터 민간 중심 구조조정

일본에선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기업들의 파산 및 구조조정 수요가 늘면서 중소기업활성화협의회를 찾는 숫자가 크게 늘었다. 일본상공회의소가 운영하는 협의회는 일종의 공공기관으로 일시적 경영 애로를 겪는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을 돕는다. 지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당시에는 5580건의 상담이 몰려 2019년(2247건)보다 2배 이상 폭증했다.

협의회는 일본에서 중소기업들이 구조조정을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법원이나 채권단이 아닌 민간에서 기업의 생사활로를 모색한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20~2021년 협의회에서 처리한 1차 상담건수는 약 1만건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전보다 2배 이상 폭증했다. 채무 상황이 곪을 때까지 버티다가 회생이나 파산 신청을 하는 한국과 사정이 다르다.

객실수 50여개, 종업원 20여명을 고용한 숙박업체 B사도 단체여행 수요 축소로 어려움을 겪다가 협의회를 찾았다. 컨설턴트는 B사가 존속이 어렵다고 판단해 회사를 분할한 후 기존 법인은 특별청산하는 형태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7억엔(약 65억 3541만원)의 차입금 중 2억엔(약 18억 6726만원)을 신규 법인이 부채로 인식하고 나머지 5억엔(46억 6815만원)은 구회사 청산을 통해 비채산사업 등과 함께 소각했다. 코로나 직전 흑자 전환에 성공했던 대표자는 신임을 얻어 새 회사에서도 경영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협의회의 전신인 중소기업재생지원협의회는 지난 2003년 2월 처음 설립됐다. 2019년 말까지 17년 동안 4만 3851개 기업을 상담했고 1만 4730개 회사의 재생계획책정 지원을 완료하는 등 설립 22년이 지난 지금 일본 중소기업 구조조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픽= 김정훈 기자)
◇민간중심 구조조정…“기업회생이 최우선가치”

일본에서 이 같은 민간 정리절차 건수가 늘어나는 배경에는 법원이나 채권자가 주도권을 갖지 않고도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는 장점에서다. 회생 과정이 공개적으로 이뤄져 낙인이 찍히는 법정관리나 채권 회수가 가장 중점이 되는 워크아웃 모두 기업 입장에서는 활용을 주저하게 된다.

협의회는 채무 상환기간 유예 등 리스케줄 안건을 다루는 절차를 우선한다. 제3자가 중립적인 입장에서 채무 조정과 중소기업 재생계획을 마련하면서 기업의 회생이 다른 가치보다 우선된다.

물론 수립된 재생계획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모니터링도 필수다. 재기 의지를 가진 중소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면서 감시를 병행해 채권자 입장에서는 기업 회생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있다. 협의회는 주요 채권자에 대해 기업현황 및 재생 가능성을 설명하고 채권자 의향을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재산권도 보호한다.

이 밖에 재판 외 분쟁 해결절차(ADR.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역시 활용도가 높은 제도다. ADR은 민사상의 분쟁 해결을 소송을 거치지 않고 공정한 제3자가 관여해 합의점을 찾아내는 제도다. 일본 법무대신의 인증을 받은 사업자(인증ADR기관)가 절차를 대리해 이견을 줄이는 역할을 맡는다.

무엇보다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중소기업이 반가운 대목이다. 협의회를 활용하는 비용은 국가의 위탁사업비에서 지출된다. 협의회 절차를 이용하는 비용의 3분의 2가 국가 보조금에서 지원되고 중소기업은 절차비용의 3분의 1만 부담하는 구조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소벤처기업부를 중심으로 금융권 인사나 법정관리인, 법조인 등과 함께 구조조정에 대한 자격증 제도를 도입해 제3자 구조조정 제도에서 제3자를 맡을 전문인원을 육성해야 한다”며 “관련 법제화를 통해 중소기업의 발 빠른 구조조정을 돕는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美·EU서도 민간중심 구조조정 활발

비단 일본 뿐 아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도 유사한 제도를 마련해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미국은 비영리 민간기구인 ‘기업회생협회’(TMA, Turnaround Management Association)가 기업 회생과 재생을 지원한다. 기업회생 컨설턴트, 변호사, 파산관재인 등 구조조정 전문가들이 도산 위기 기업을 분석해 재생 및 청산을 결정하고 전략을 설정한다.

EU도 지난 2019년부터 예방적 기업구조조정 지침을 마련했다. 프랑스의 신속보전절차와 독일의 보호막 절차 및 구조조정 제도, 네덜란드의 WHOA 등이 2020년 이후 입법을 통해 마련된 제도다. 영국 역시 ‘도산전문가’라는 면허를 도입해 제3자를 통한 기업의 사전 구조조정을 돕고 있다.

최수정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의 경우 기업체가 파산하면 은행 입장에서는 클라이언트가 사라진다는 인식이 강해서 채권단들의 중소기업활성화협의회 의견에 대한 동의가 높은 편”이라며 “우리나라도 자율구조조정지원 프로그램(ARS)에서 변호사나 금융권 인사 등 제3중재자를 외부에서 선임할 계획을 발표한 만큼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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