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잣나무숲서 태동한 산촌경제 생태계, 청년을 깨운다

박진환 기자I 2024.11.14 05:00:00

■연속 기획-숲, 지역과 산촌을 살린다(17)
경기 양평 삼산리 잣나무숲,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 선정
1963년부터 100㏊ 규모에 잣나무 조림…인공림 성공 사례
인근 산촌주민들과 협약… 산림보호·임산물채취 상생모델
인근 수미마을서 각종 체험·청년 대상 귀농·귀촌교육 인기

산과 숲의 의미와 가치가 변화하고 있다. 가치와 의미의 변화는 역사에 기인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폐화한 산을 다시 푸르게 만들기 위해 우리는 어렵고 힘든 50년이라는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산림청으로 일원화된 정부의 국토녹화 정책은 영민하게 집행됐고 불과 반세기 만에 전 세계 유일무이한 국토녹화를 달성했다. 이제 진정한 산림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산림을 자연인 동시에 자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본보는 지난해 산림청이 선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품 숲을 탐방, 숲을 플랫폼으로 지역 관광자원, 산림문화자원, 레포츠까지 연계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100회에 걸쳐 기획 보도하고 지역주민들의 삶을 조명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경기 양평 삼산리 잣나무숲 전경. (사진=수원국유림관리소 제공)
[양평=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평군은 수도권에서는 드물게 천혜의 자원환경을 보전하고 있는 지역이다. 양평 일대의 상수원보호구역은 77㎢로 여의도 면적의 10배 가량에 달한다. 경기 양평에 이처럼 넓은 상수원보호구역이 있게 된 배경은 1973년에 팔당댐으로 강을 막은 후부터다.

그간 상수원보호구역은 양평에 거주하는 지역주민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제초제 사용이 금지됐고 일체의 공장 건설도 불허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개발이 억제된 결과, 양평은 경기 동남부권에서 가장 친환경 지역이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전국 최초의 친환경 농업특구로 지정되면서 무공해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고, 깨끗한 자연환경은 관광과 농업, 임업 등 새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자산이 되고 있다.

경기 양평 삼산리 잣나무숲 전경. (사진=수원국유림관리소 제공)
◇경기 양평 삼산리 잣나무숲, 1963년부터 100㏊ 규모 잣나무 조림…인공림 성공 사례

11월에 찾은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삼산리 잣나무숲은 겨울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숲이 있는 일당산(해발 453m)은 정상이 높지 않고 등산로가 가파르지 않아 가벼운 산행을 즐기는 이들이 좋아한다고 한다.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는 곰지기계곡에는 위로 나뭇가지가 짙푸른 터널을 이루고 있었고, 아래로는 수많은 야생화가 화사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일당산 정상부에 오르면 양동면 소재지와 작은 마을이 눈 아래로 보였고, 멀리 원주 쪽으로는 비로봉을 비롯한 치악산 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시야가 확보되는 맑은 날에는 여주쪽 남한강이 느긋하게 흐르며 반짝거린다고 한다.

이 일대는 모두 국유림으로 1963년부터 키운 잣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뤄 번성하고 있었다. 잣나무는 고산지대의 추운 기후에서 주로 자라며, 일단 뿌리를 내리면 곧게 하늘로 뻗어 오른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 동부에 자생하는데 한국의 경우 지리산 이북 높은 산지의 능선에서 주로 자란다.

소나무와 잣나무를 가장 쉽게 구분하는 방법은 잎의 개수다. 높은 나뭇가지까지 손이 닿지 않으니 바닥에 떨어진 잎사귀로 확인한다. 솔잎은 2가닥, 잣나무 잎은 5가닥이다. 더 명확히 구분되는 건 열매다.

소나무 구과(열매 집)는 작고 동글동글해 솔방울이라 부른다. 반면 잣나무 열매 집은 솔방울보다 굵고 길쭉해 잣송이라 부른다. 알도 튼실해 소나무 종자가 바람으로 이동하는데 비해 잣나무 씨앗은 어치 다람쥐 청솔모 등 산짐승의 도움으로 전파된다.

잣은 오래전부터 귀한 식재료였다. 재질이 고르고 가볍고 향기가 좋고, 가공하기도 쉽다. 잣송이에 들어 있는 80~90개의 씨앗은 갖가지 요리와 약용으로 쓰인다.

잣나무숲 입구에 들어서자 곧게 자란 아름드리 잣나무가 신비스러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짙은 녹색을 띠는 잎사귀와 회백색의 나무껍질이 어우러져 솔숲과는 또 다른 매력을 풍겼다. 양평 잣나무숲은 산림 자원으로서 가치가 뛰어난 잣나무를 본격적으로 조림한 지역이다.

산림청은 1963년부터 100㏊ 면적에 잣나무를 심었으며, 이후 지속적으로 솎아베기를 하는 등 숲가꾸기를 실시했다. 양평 잣나무숲은 가슴높이 지름 34㎝, 높이 17m, 임목축적 182㎥/㏊의 인공림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경기 양평 삼산리 잣나무숲 내 경기옛길 안내 표시판. (사진=수원국유림관리소 제공)
◇주민들은 국유림 보호 및 산불감시 역할 담당…잣 등 임산물 채취로 수익 창출 ‘상생모델’

양평 잣나무숲은 2004년 우량한 큰지름 잣나무를 생산하기 위한 경제림육성단지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숲에 깊숙히 들어가자 봄의 상큼함이나 여름의 눅진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맑고 신선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기운에 머릿속까지 개운해졌다.

50여년간 정성 들여 가꾼 잣나무숲이 안착하면서 인근 산촌주민들과 새로운 상생모델도 만들고 있다. 북부지방산림청 수원국유림관리소 안유주 주무관은 “지역주민들이 국유림 보호 활동을 해주고, 그 댓가로 숲에서 나온 잣을 채취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며 “앞으로 잘 가꾼 숲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모델을 연구, 시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주민들도 화답에 나섰다. 최현구(88) 양평군 삼산2리 노인회장은 “인근에 관광지와 삼산리 잣나무숲을 연계하면 좋은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과거 땔감이 부족한 시절에는 산에 조그만 나무라도 모두 베어가기 바빴지만 주민들이 나서서 조림에 동참한 결과, 어느덧 나무가 풍성한 숲으로 변화했다”고 전했다.

안유주 주무관은 “그간 숲가꾸기 사업을 여러차례 진행했다”면서 “최근에는 소나무재선충병 등 산림 병해충 관리에 집중하는 한편 숲에서 나온 수확물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소득 증대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림녹화 및 경제림 조성의 성공 모델인 양평 삼산리 잣나무숲이 최근에는 경기옛길 코스로 유명해지면서 걷기 여행하기 좋을 길로 재조명받고 있다. 경기옛길은 역사적 고증을 토대로 원형을 밝혀 지역의 문화유산을 도보길로 연결한 새로운 형태의 역사문화탐방로를 말한다. 이 길은 조선시대 한양과 각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로 경기도내 22개 시·군에 걸쳐 677㎞ 구간이 연결돼 있다.

양평 삼산리 잣나무숲은 경기옛길 중 평해길(130㎞)의 마지막 구간인 솔치길로 고요함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이 길에서 만난 강환태(67)씨는 “지난 2년 동안 지인들과 함께 경기옛길 677㎞ 구간 중 100㎞ 구간을 제외한 전 구간을 완주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경기 양평 삼산리 잣나무숲 전경. (사진=박진환 기자)
◇경기도내 22개 시·군 677㎞ 구간 ‘경기옛길’ 중 평해길 마지막 구간…도보여행 만족도 높아

양평 삼산리 잣나무숲이 대한민국 100대 명품숲으로 지정된 후 주변 산촌마을들도 활기를 띠고 있다. 이 중 양평 단월면의 수미마을은 국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계절에 따라 이뤄지는 농작물 수확 체험은 물론 농촌에서 즐길 만한 액티비티를 다수 갖췄다.

특히 체험 프로그램을 연중 상설 운영하는 방식으로 계절마다 체험과 축제 등 재밌는 농촌을 만들었다. 마을에서 수확한 농작물로 찐빵이나 피자를 만드는 체험부터 여름철 물놀이 시설에 맨손으로 메기를 잡아보는 체험 등은 인기 프로그램이다.

최근에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년 귀농·귀촌 장기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지역소멸을 막고, 농·산촌을 살리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청년귀농 장기교육은 창농에 필요한 현장 경험과 전문가 인큐베이팅 지원을 통한 청년 귀농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6개월 장기교육으로 작목 직접 재배를 통한 영농 기술 교육 및 실제 복합농업활동과 농촌생활을 통해 직접 학습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수미마을 청년귀농 장기교육은 ‘지속가능한 도농상생을 위한 인재양성’이라는 슬로건을 갖고, 농촌과 농촌 공동체에 대한 이해, 귀농·귀촌과 관련된 주제로 농·임업, 농·임산물 가공 등 이론과 실습을 통해 귀농·귀촌의 모든 것들을 교육하고 있다.

최성준 수미마을 대표가 방문객센터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박진환 기자)
◇인근 수미마을은 국내서 가장 성공적인 농촌 체험마을…청년 대상 귀농·귀촌 교육도 인기

최성준 수미마을 대표는 “원래 이 마을에는 150여년 된 밤나무들이 있는 숲이었고, 주민들은 인근 하천의 유원지를 중심으로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면서 “하천과 숲을 이용한 사업을 구상하다가 농촌 체험 활동으로 전환한 것이 2007년경으로 이후 산촌 공동체 활성화 사업 등도 같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을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을 주축으로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게 됐고, 새롭게 이주한 주민들이 추가로 참여하면서 영농조합법인이 커지게 됐다”며 “2016년부터는 조합원이 260여명으로 늘었고, 2019년까지 조합 매출이 정점을 찍다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다시 주춤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최 대표는 “최근에는 청년들에게 마을의 유휴시설인 건물과 텃밭을 장기 임대해주는 교육·사업을 하고 있다”며 “3개월부터 1년까지 농·산촌에서 직접 살아보고 귀농·귀촌을 결정해보라는 취지로 시작했으며, 이 프로그램은 산촌에 활력을 주는 동시에 지역소멸을 막는 상생 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귀농·귀촌 교육에 이어 수미마을의 공동 브랜드를 활용한 창업 지원까지 연계하고 있다”며 “공동화 현상을 겪는 농·산촌의 현실을 고려하면 유휴 부지와 시설을 이용해 청년들을 위한 교육과 창업 등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인구가 유입되고, 마을을 유지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즐겁고 재미있는 수미마을을 뒤로 하고, 보다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미래의 산촌을 꿈꾸며 양평을 떠났다.

경기 양평 단월면 수미마을에 있는 150년된 밤나무. (사진=박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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