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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자체가 중소기업에서 많이 일어났기 때문일까? 그렇지도 않다. 기업규모별 발생사고 비중은 대기업 46%, 중소기업 54%로 거의 반반이었다.
이쯤 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 가설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법의 맹점과 우리 기업 현실이 이같은 결과를 낳았다. 중대재해법은 제4조를 통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의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사항을 명시하고 있다. 크게 보면 9가지, 세부적으로 보면 최대 13가지다. 그 중에는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사항도 있다. 예를 들어 안전·보건 전담 조직을 구성하고 안전관리자를 둔다든지, 위험성 평가를 실시한다든지, 재해 예방을 위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한다든지 등이다.
중대재해법은 이 의무사항을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했다고 판단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이 의무사항을 충실히 이행한 경우엔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이다.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로펌들을 통해 사전 컨설팅을 받고 의무사항을 이행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다. 로펌이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중대재해법의 처벌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같은 사전 대응은 중소기업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법 시행 초반에 비해 로펌의 컨설팅 비용이 다소 낮아졌다는 풍문도 들리지만 여전히 중소기업들이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영세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되는 첫해인 2024년에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례가 쏟아지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또 하나 삐딱하게 볼 수 있는 건 고용노동부 공무원들과 현장 안전관리자들의 몸값 상승이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예년보다 많은 고용부 공무원들이 대형로펌이나 대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현장 안전관리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안전관리기사 자격증 보유자들의 급여도 상당 부분 뛰었다고 한다. 이같은 현상은 올한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영세업체들은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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