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한다더니…러시아에 수백억대 군수품 대준 튀르키예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온 튀르키예(옛 터키)가 지난해에만 러시아군에 수백억원대 군수 물자를 대준 것으로 드러났다.

3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D)은 자체적으로 확보한 무역통계를 인용해 작년 튀르키예 업체 최소 13곳이 미국의 대러(對러) 제재 대상인 러시아 업체 최소 10곳에 1850만달러(약 230억원) 상당의 물자를 수출했다고 보도했다. 수출 품목은 플라스틱과 고무, 차량 등이다. WSJ은 이들 기업이 미국산 제품도 3차례 이상 수출했다고 썼다. 고무는 러시아의 T-80 전차 보호장비를 제조하는 데, 플라스틱의 경우 전차와 선박, 헬멧, 방탄복 등을 만드는데 각각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옛 터키) 대통령.(사진=AFP)

또 이들 튀르키예 업체는 지난해 3~10월 미국산 엘리베이터와 발전기, 회로기판 등 1500만달러(약 186억원)어치도 러시아에 수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더 나아가 트럭용 핸들과 미국산 엔진 필터 등도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WSJ은 “물품을 수입한 러시아 기업 중엔 국영 방산업체 전술미사일회사(KTRV)와 총기 제조업체 프롬테크놀로지야도 포함돼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어떤 방식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해 군사 물자를 조달하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튀르키예 및 러시아 당국은 이번 보도와 관련한 WSJ의 코멘트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미국을 비롯한 30여개국은 그간 대러 군수품 조달을 전면 차단하기 위한 제재를 강화해왔지만, 튀르키예는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며 제재 전선 합류에 소극적이었다. 이에 브라이언 넬슨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은 지난달 29일부터 이날까지 튀르키예를 찾아 제재 위반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튀르키예는 미국이 아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에만 동참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