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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박기주 김보겸 기자] 최근 베트남 아내 폭행사건으로 이주여성에 대한 폭행이 사회적 조명을 받고 있는 가운데 다문화가정 내 폭행으로 검거된 사람이 올해에만 벌써 400명이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작년 한 해동안 약 46%가 늘어나는 등 심각성이 더 커지고 있다.
◇다문화가정 내 폭력 피의자, 올해 5월까지 427명…최근 몇년간 증가세
11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다문화가정 내 폭력으로 경찰에 검거된 인원은 총 427명으로, 이 가운데 159명은 기소됐고 168명은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됐다. 가정폭력 피해자는 모두 523명으로 집계됐다. 경찰 관계자는 “다문화가정의 가정폭력은 쌍방폭행으로 입건되는 경우도 있지만 외국인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올 초 설 연휴를 앞두고 가정폭력 전력이 있는 다문화가정에 방문한 학대전담경찰관(APO)은 이주여성과 상담 중 폭력 정황을 발견한 후 즉각 피의자를 입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북에서는 술에 취해 자녀의 머리에 드라이버를 던져 중상을 입히는 등 폭행을 일삼은 다문화가정의 남편이 긴급 체포돼 구속 송치되기도 했다.
이 같은 다문화가정 내 폭력으로 검거되는 인원은 최근 몇 년 새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15년 806명에 그쳤던 이 수치는 2016년 1010명, 2017년 918명, 2018년 1340명으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피해자 역시 같은 기간 764명에서 1213명으로 증가했다. 전체 가정폭력 검거건수에서 다문화가정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매년 2.1% 수준을 유지했지만 지난해 3.1%까지 커지기도 했다. 특히 피해자를 국적별로 살펴보면 중국(조선족) 국적을 가진 인원이 지난해 기준 30.6%로 가장 많았고 베트남(24.1%)·중국(한족, 9.2%)·필리핀(7.0%)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보다 생활수준이 비교적 낮은 국가가 대부분이다.
시민단체에서는 이러한 국가적 특성과 한국 사회 내의 여성에 대한 성차별 문화가 합쳐지면서 다문화가정 내 폭력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강혜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공동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지금 이주여성을 말하면 미국 등 선진국이 아닌 베트남 등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오고 피부색이 어두운 여성을 떠올리듯이 사회 전반적으로 이주민에 대해 무시를 하는 경향이 크다”며 “이주 여성은 친정도 멀리 있는데다가 남편이 부인을 내 맘대로 해도 된다는 인식을 가진 경우가 많은데, 이 같은 성차별 인종차별적인 문화가 (다문화가정 폭력의) 원인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주여성 발목 잡는 ‘체류권’…법무부·대법원 결정으로 해결될까
일각에서는 이처럼 다문화가정 내 폭력이 늘어나고 있는 배경에는 이주여성이 남편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는 ‘체류권’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현행법에서는 결혼이민을 하고 비자연장을 하거나 영주권 신청을 할 때 남편의 신원보증이 필요하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가 상하관계가 될 수밖에 없고, 가정폭력이 만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지난 10일 결혼이민자들과 체류권 문제 해결을 위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법무부는 이를 통해 한국인 배우자가 결혼이민자의 체류연장 등 과정에서 자신의 지위를 일방적으로 행사에 피해자가 발생하는 방안을 찾을 계획이다. 또한 같은 날 대법원은 이정표가 될 수 있는 판결을 내놨다. 대법원은 결혼 이주여성이 이혼했을 경우 이혼에 대해 남편의 책임이 더 크면 해당 여성의 체류자격을 연장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다문화가정 폭력 문제 해결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법원 판결 등이) 외국인 아내를 때리는 한국 남성의 태도에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지만 매 맞는 이주여성들이 신고를 할 가능성은 높아져 가정폭력이 발생했는데도 신고를 못 하는 문제는 줄어들 것”이라며 “위장결혼의 가능성도 있지만 그 문제는 확인절차를 구체화해 해결할 문제일 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