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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하얀 메밀꽃이 피었다. 메밀의 붉은 꽃대가 이슬에 젖어 항라적삼처럼 하늘거린다. 시기가 이른 탓에 꽃은 자잘하다. 산허리에 드문드문 핀 메밀꽃은 싸락눈이 온 듯 희끗희끗하다. 열흘쯤 지나면 제대로 만개할 거다. 그래도 제법 풋풋한 향기가 알싸하다. 껑충 큰 노란 마타리꽃이 불쑥 고개를 주억인다. 어느새 사람 키만큼 자란 억새도 바람에 건들거린다. 햐얀 개망초꽃과 노란 달맞이꽃은 지천에 널렸다. 물봉선화는 종종 모여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보랏빛 쑥부쟁이는 이미 기세등등하게 활짝 피었다. 가을이 온 거다. 아침저녁으로 바람도 선선하다. 살갗에 연한 소름이 돋을 정도다. 메밀꽃이 필 무렵 강원 평창군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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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꽃 향기 머금어 구수하고 담백한 ‘봉평메밀국수’
평창으로 가는 길. 인천과 동해안을 잇는 영동고속도로가 가장 빠른 길이다. 하지만 주말이면 어김없이 완행도로가 된다. 우회도로인 6번 국도는 양평에서 횡성을 지나 평창으로 이어지는 멋진 드라이브길. 팔당댐의 맑은 물을 지나 남한강을 따라 달리다 보면 횡성을 거쳐 해발 1000m 가까운 구불구불 고갯길로 들어선다. 태기산(1261m)을 넘어가는 양두구미재다. 차창을 내리고 달리면 삼림욕장에 들어선 듯한 상쾌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태기산 너머 평창군의 봉평면이 이번 여행지의 목적지다.
먼 길 돌아왔으니 일단 배부터 채우자. 평창은 한우도 유명하지만 이맘때는 역시 메밀요리가 별미다. 이곳 봉평은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곳. 특히 소설 속에 등장하는 5일장인 봉평장은 메밀요리가 유명하다. 봉평 최고의 특산물인 메밀국수와 메밀묵 등을 장터 곳곳에서 맛볼 수 있다. 초가을 음식 여행지로도 손색이 없다.
4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봉평장은 1930년대 전국에서 가장 큰 장터 중 하나였다. 매월 2일과 7일이 되면 오전 7시부터 상인들이 모여든다. 봉평의 메밀과 온갖 약초, 산나물, 잡곡 등이 넘쳐난다. 수수부꾸미 하나 입에 넣고 장터를 기웃댄다. 메밀 모주와 막걸리를 연거푸 들이켜는 어르신이며, 메밀전병과 메밀전을 앞에 놓고 자지러지게 웃어젖히는 동네 아주머니들을 보자니 시간이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메밀국수집이 열댓 곳 있는데 메밀과 감자요리가 주를 이룬다. 원조격인 식당은 ‘현대막국수’ ‘진미막국수’ ‘봉평막국수’ 등. 40년 전부터 봉평장터에서 국수를 말아 팔기 시작했으니 역사와 전통은 인정해줄 만하다. 봉평장 초입의 ‘미가연’은 일반 메밀보다 알갱이가 작은 쓴메밀로 유명하다. 음식 빛깔이 일반메밀보다 조금 더 노릿하다. 묵과 노란 새싹을 들기름에 무쳐낸 메밀싹 묵무침, 메밀싹나물 비빔밥, 메밀싹 육회 등 메밀싹을 이용한 요리가 많다. 봉평장 옆 이효석문학관 앞에도 메밀요리전문점이 늘어서 있다. 그중 ‘메밀마당’은 메밀전병과 메밀전, 메밀만두 등 메밀음식 외에도 쫀득쫀득한 감자송편과 감자전이 맛깔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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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이 간직한 최고 비경 ‘칠족령’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면 가벼운 트레킹으로 가을 숲을 느껴볼 차례. 목적지는 마하리의 백운산 자락의 칠족령이다. 동강의 최고 비경을 간직한 칠족령에 이르려면 미탄면 문희마을을 찾아가야 한다. 미탄면 소재지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백운리 쪽으로 향하다 물길을 따라 우회전해 가다 보면 마하리 어름치마을을 만난다. 민물고기생태관이 들어서 있는 여기서부터 동강을 바짝 옆에 붙이고 달리는 시멘트도로다. 길옆의 강변에는 줄배가 매여 있고, 그 배로 건널 수 있는 강 건너편에는 띄엄띄엄 낡은 집이 들어서 있다. 그 길의 막다른 끝에 문희마을이 있다. 동강의 물길이 푸근하게 내려다보이는 마을이다.
문희마을에서 칠족령까지는 1.8㎞. 등산로는 경사가 급하지 않고 순하디순한 길이어서 어른 걸음으로 40분 정도면 올라간다. 산허리를 감아도는 등산로 오른편의 가파른 비탈 아래로 동강이 흐른다. 워낙 빼곡히 나무가 들어서 있어 등산로 중간에선 좀처럼 물길이 내려다보이지 않는다. 칠족령이란 이름은 고개 건너편 제장마을에서 옻을 굽던 집의 개가 이 고개 마루턱을 넘나들며 발자국을 찍었다고 해서 ‘옻 칠(漆)’자에 ‘발 족(足)’자를 붙여 지었다고 한다.
20여분 쯤 오르자 돌탑이 나온다. 옛날 평창과 영월의 경계로 삼았던 성터의 흔적이다. 여기서 10분 정도 더 오르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칠족령 정상을 넘는 길이고, 오른편은 전망대로 향하는 내리막길이다. 오른편으로 내려가자 까마득한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나무 전망대가 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 서자 병풍처럼 둘러친 산맥이 이어지고 그 아래로 물길이 용틀임을 하며 흘러가는 장쾌한 풍광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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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의 하늘 날다 ‘장암산 패러글라이딩’
산행을 마쳤다면 차를 타고 올라 멋지게 굽이치는 평창강의 물줄기와 산줄기를 감상할 차례. 내륙 산간 고지대니 산봉을 감싸고 흐르는 물줄기도 심하게 굽이치는 사행천이 대부분이다. 이 풍경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곳이 평창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장암산(836m)이다. 평창읍에서 42번 국도를 타고 미탄면 쪽으로 가다가 노론리 쪽으로 좌회전해 차로 10여분 오르면 패러글라이딩 이륙장인 장암산 전망대에 이른다.
가을철이면 이곳 장암산은 인파로 붐빈다. 대부분이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다. 장암산 활공장은 국내서 천혜의 비행 환경을 갖춘 곳이다. 조나단 패러글라이딩 스쿨(033-333-2625)의 김동술 대표는 우연히 이곳을 찾았다가 반해 6년 전 아예 귀촌을 했다. 그는 “이·착륙장은 물론 풍광까지 초급자부터 고급자까지 두루 비행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엄지를 세웠다.
“하나, 둘, 셋, 뛰엇!” 장비를 착용하고 강사의 구령을 뒤로한 채 낭떠러지로 달릴 때의 짜릿함은 최고다. 막상 땅에서 발이 떨어지고 활공을 시작하면 두려움은 날아가고 초록 세상 위를 부유하는 상쾌함만 남는다. 평온한 마음이 되면 주변으로 눈이 간다. 형형색색의 기구들이 하늘을 수놓는 장관이 펼쳐진다. 평창읍내와 말굽모양으로 휘감아 도는 평창강의 절경이 발아래로 끝없이 이어진다. 시야를 멀리 두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과 이제 곧 황금빛으로 변해갈 논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10분 전후 하늘에 머무는 탠덤비행(강사와 함께 타는 초급자용 2인 비행)에 드는 비용은 8만원이다.
△가는길=봉평 메밀꽃을 보려면 강릉 방향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면온IC를 나와 봉평면으로 가면 된다.
△잠잘곳=평창에는 숙소가 많지 않다.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인근의 리조트를 추천한다. 알펜시아리조트(033-339-9000), 휘닉스파크(033-330-6000), 용평리조트(033-335-5757) 등이 있다.
△먹을곳=메밀마을인 봉평에선 현대막국수(033-335-0314), 봉평막국수(033-335-9622) 등이 유명하다. 조금 발품을 팔아 대화면 백조막국수(033-333-2280)를 찾아도 좋다. 인근 주민이 즐겨 찾는 집으로 정통 산골 막국수를 낸다. 대화면 우회도로를 타면 간판이 보인다.
△볼거리=4일부터 13일까지 ‘2015 평창 효석문화제’가 봉평면 효석문화마을 일원에서 열린다.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가산 이효석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축제다. 올해 주제는 ‘연인과 사랑’. 소설 속 주인공인 허생원과 성씨 처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와 메밀꽃의 꽃말인 연인을 결합해 주제로 정했다. 문화제 기간 동안에는 독서토론회, 보물찾기, 민속놀이, 굴렁쇠 굴리기, 제기차기, 봉숭아 물들이기, 목발집기, 도리깨질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연다. 또 대형 분틀을 이용해 직접 메밀국수를 만들어 볼 수도 있다. 문화제 기간 내내 봉평면 지역 음심점들은 방문객에게 음식값의 10%를, 펜션은 숙박비의 50%를 할인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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