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워크아웃으로는 한계…中企 "제3자 구조조정 필요"

김영환 기자I 2025.01.31 05:35:00

[갈 길 먼 제3자 구조조정]①법정관리 기피하는 중기업계…기업 정상화에 장기간 소요
채권자 중심 워크아웃은 기업 회생 목소리 담는 데 한계
중립성·공공성 유지할 제3자 구조조정 기관 설립 정책 필요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재무 상황이 심각해질 때까지 버티다가 더이상 연명이 어려워져야 회생이나 파산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생·파산사건을 처리하는 한 회생법원 판사의 말이다. 회생 혹은 워크아웃 신청은 경영인이 정상 영업 포기를 마음먹을 때나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대내외 경영환경 악화로 기초체력이 약한 중소기업계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을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선제적으로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이 가능한 ‘제3자 구조조정 제도’ 도입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역대 최대규모의 파산·회생신청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속도감 있는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제3의 구조조정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30일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파산을 신청한 법인은 1940곳에 이른다. 전년(1657곳)대비 약 300개나 늘어난 수치로 하루 평균 5.3개 기업이 망한 셈이다. 회생신청 법인 수도 1094곳이나 됐다.

파산 또는 회생절차까지 밟지는 않았지만 자금난도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해 8월 0.03%에 머물던 어음 부도율은 지난해 11월 0.21%로 급증했다. 2023년 4월(0.26%) 이후 1년7개월 만에 최고치다. 여러 지표가 올해 도산 신청 기업이 큰 폭으로 늘어날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그래픽= 이미나 기자)
역대급 구조조정 신청이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소기업계는 ‘법정관리(회생 절차)’와 ‘워크아웃’ 외 다른 제도 도입을 바라고 있다. 법원(법정관리)이나 채권단(워크아웃)이 아닌 제3자가 기업의 회생 가능성을 보고 지원책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제3자 구조조정제도’를 도입하면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해서다.

이영경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 입장에서는 회생절차를 밟지 않고 사전에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면 이용하겠지만 국내에는 이런 제도가 없는 상황”이라며 도산 전 구조조정제도 다양화 필요성을 주장했다.

현재 한국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업구조조정제도인 법정관리와 워크아웃은 시장에 회사의 어려움을 알려야만 구원의 손길을 받을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이 위원은 “회생신청 사실이 알려지면 낙인 효과로 인해 변제 기한이 남은 대출도 바로 돈을 갚아야 해서 오히려 더 부담이 커질 수 있다”라면서 “워크아웃의 경우도 (워크아웃을) 반대하는 채권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한계가 있어 두 가지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워크아웃의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한시법으로 늘 위헌 논란이 뒤따른다.

일본의 ‘중소기업활성화협의회’나 미국의 ‘기업회생협회’(TMA) 등은 이해관계자가 아닌 제3자가 객관적으로 기업을 진단하는 까닭에 대표적인 구조조정 제도로 자리잡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예방적 기업구조조정 지침을 각국에 권장하고 있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제3자가 특정 기업의 회생 절차를 결정한다는 건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채권 회수를 앞세우는 워크아웃이나 상거래 단절이 이뤄지는 법정관리 외에 중소기업을 위한 새로운 구조조정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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