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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사기수법 분석해보니…'징벌자' '구세주' 1인 2역

노희준 기자I 2018.05.01 06:30:00

최근 증가 정부기관 사치형 보이스피싱 분석
범죄 연루됐다고 불안심리 조장한 뒤
통장 양도 범죄자냐 명의도용 피해자 구도 몰아
피해자로 검찰 사칭 사기꾼들 믿게 만들어
위조 사이트·공문서·신분증 동원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쓴 가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사이트 <자료=박모씨>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박00씨? 서울 서부지검의 박영기 수사관입니다. 박00씨 앞으로 된 명의도용 사건 및 개인정보 유출 사기사건 관련해서 몇 가지 확인 조사차 연락을 드렸습니다.”

검찰, 금융감독원 등 정부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의 실제 통화 도입부다. 최근 검찰·경찰·금감원을 사칭해 돈을 가로채는 보이스피싱이 활개를 치고 있다. 9억원을 사기당한 70대 보이스피싱 사건은 금감원을 사칭한 건이었다. 8억원을 피해 입은 사례는 검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에 속은 20대 여성 건이었다. 두 사건은 보이스피싱 역대 피해금액 1,2위다.

수법은 유사하다. 피해자 명의의 대포통장이 범죄에 연루됐고 처벌을 피하려면 돈을 맡겨야 한다는 허술한 속임수다. 하지만 이 수법에 한해 6000여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700억원 넘게 사기를 당한다.

1일 <이데일리>가 전문가들과 함께 최근 서울 동작경찰서에 붙잡힌 정부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의 통화내역를 확보해 사기수법을 분석해봤다.

사기범들은 피해자를 고립시킨 채 미리 짠 각본 속에서 ‘징벌자’와 ‘구세주’의 두얼굴로 피해자의 판단을 흐려 돈을 넘겨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의심을 피하기 위해 위조한 검찰 사이트와 허위 공문서 등을 동원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쓴 위조 금감원 신분증 <자료=동작경찰서>
◇ 통장 넘긴 범죄자 vs 명의도용 피해자 양자택일 강요

사기범들은 일반적으로 피해자 이름의 대포통장이 범죄에 이용됐다 식으로 함정을 판다.

“최근 금융사기로 김명석외 8명의 공범을 검거했는데 압수수색 당시 압수물품 중에 박00씨의 우리은행, 하나은행 통장이 발견됐습니다”

“통장을 타인에게 양도한 적이 있으신가요? 김명석은 100만원을 주고 다수의 명의자에게 통장을 양도받았다고 진술했어요. 그런데 본인(사기범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본인’이라고 표현했다)께서는 통장을 양도한 적이 없는 명의도용 피해자라고 말씀을 해주시니 피해를 입증하기 위한 조사를 받으시면 됩니다.”

사기범들은 이같은 수법으로 피해자를 대포통장을 직접 넘긴 ‘범죄자’와 자신도 모르게 대포통장이 개설된 ‘명의도용 피해자’의 양자택일 상황으로 몰고 간다. 시민들은 명의도용 피해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검찰을 사칭한 사기범들의 지시에 따르게 된다.

곽태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불안심리를 조성하고 사기꾼한테 (돈을) 맡기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처럼 해서 피해자를 궁지에 몰아넣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순간 사기범을 믿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기범들은 피해자를 겁박하기 위해 피해자가 형사처벌과 금전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속였다.

“본인이 무고한 피해자라는 것이 입증 안 되면 모든 나머지 계좌도 동결하고 자산은 국고로 환수됩니다. 연루된 사기 범죄 피해 금액은 본인이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피해 입증을 해야 합니다.”

타인에게 대포통장을 양도하면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는 일부러 통장을 넘길 때만 해당한다. 실제 대포통장을 타인에게 양도한 적이 없는 사람은 설사 개인정보 유출 등으로 통장이 개설돼 범죄에 사용됐다고 하더라고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대순 변호사는 “이런 경우 통장 명의자는 귀책사유가 없어 책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쓴 위조 공문서 <자료=동작경찰서>
◇ 위조 사이트·허위 공문서·가짜 신분증 동원도

사기범들은 경찰이나 금감원에 출석해 조사를 받아야 하지만 전화로 약식 조사를 하는 것처럼 위장한다.

“원래는 소환조사가 원칙인데 박00씨는 나이도 어리고 전과도 없어 약식조사를 하기 위해 전화로 연락했습니다. (범죄 연루계좌) 자금조사 때 1원이라도 불법자금이 들어있으면 돌려받지 못 하지만 혐의점이 없으면 돌려줍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처음에는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로 겁을 집어먹게 한 후에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한다”며 “이를 통해 우리는 검사니까 말하는 대로면 하면 문제가 없고 그대로 따라오라고 속여 돈을 넘겨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화로 피해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요구도 거짓이다. 경찰 관계자는 “전화로 진술을 받는 경우는 절대 없다. 피해자든 피의자든 출석해서 진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런 속임수가 통용되는 것은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피해자 귀 뿐만 아니라 눈도 속이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말로만 하면 피해자가 의심할 수 있지만 조작한 검찰 사이트를 피해자에게 보내줘 들어가게 한 뒤 가짜 사이트에서 본인 눈으로 자신의 인적 사항이 게재된 수사 관련 공문서를 확인하면 설사 위조된 것이라도 믿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사기범들은 박씨에게도 가짜 서울중앙지검 사이트 주소를 보내 위조 공문서를 확인토록 했다. 다른 보이스피싱 범죄에서는 위조한 구속영장이 사용되기도 했다. 노량진역으로 박씨에게 돈을 받으러 나온 금감원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입금책)은 가짜 금감원 문서(금융범죄금융계좌추적민원)를 제시하고 위조한 금감원 직원 신분증도 내밀었다.

사기범은 통화 내내 ‘피해자 고립화’ 전략을 쓴다. 통화 초반부터 전화를 어디서 받는지 묻고 조용한 곳에서 홀로 받으라고 지시했다. 녹취중에 주의 잡음이나 제3자 목소리가 섞이면 약식조사 증거자료로 채택되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객관적인 판단을 차단하기 위한 술책이다. 실제 사기범은 조사 사실을 가족이나 은행 직원 등 제3자에게 발설하면 구속수사로 전환될 수 있다고 협박하기도 한다.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쓴 위조 공문서 <자료=동작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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