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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지적하면 꼴페미·메갈”… 익명의 인하대생이 말했다

송혜수 기자I 2022.07.27 07:11:04
[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캠퍼스 내 ‘성폭행 사망’ 사건이 일어난 인하대에서 성차별적 대학 문화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잇따라 붙었다.

지난 25일 인하대 교내 게시판에 붙은 대자보. 성차별적 문화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진=연합뉴스)
익명의 인하대생 A라고 밝힌 그는 지난 25일 교내에 ‘당신의 목소리를 키워 응답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자필 대자보를 게재했다.

A씨는 “이 학교에는 ‘공공연히 떠드는 사람’과 ‘숨죽여 말하는 사람’이 있다”며 “공공연하게 떠드는 사람들은 이번 사건으로 입시결과(입결)이 걱정된다고 말한다. 반면 폭력이 걱정돼 불쾌한 상황에도 친절하게 살아야 하는 여성, 학내 성폭력 사건과 성차별적 문화를 지적하면 ‘꼴페미’, ‘메갈’로 공격을 당할까 봐 자기를 검열하는 사람들은 숨을 죽인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누군가는 갑자기 상관없는 사람 때문에 잠재적인 가해자로 불려서 혹은 입결과 학벌이 떨어져서 ‘남성’이자 ‘대학생’으로서 위신이 무너졌다고 말한다”라며 “반면 다른 누군가는 폭력과 수치가 걱정보다 더 가까운 곳에 있다는 사실에 공포를 느끼고 숨죽이며 자신과 동료 시민의 안녕을 걱정한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 인하대에서 발생했던 또 다른 성폭력 사건을 언급하며 학교에선 관련 문제를 경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남자 의대생들이 단톡방에서 여학우들을 성희롱하고 총학생회 남후보가 여학우를 스토킹했을 때도 누군가는 성급히 일반화하지 말고 잠재적 가해자로 몰지 말라는 말을 했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A씨는 “최근 마주한 사건은 평등한 학교, 안전한 학교를 세우는 일이 시급한 과제를 넘어 뒤늦은 과제임을 분명히 말한다”며 “판을 갈 때다. 오늘날 학교가 맞은 위기는 무엇을 우선 말하고, 우선 듣고, 우선 답해야 하는지 가리지 못해 벌어졌다. 뻔하고 시끄럽기만 한, 내용 없는 소리가 아닌 대안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26일 인하대에 게재된 또 다른 대자보. (사진=트위터 캡처)
A씨의 대자보가 붙은 다음 날 26일에는 ‘성차별을 성차별이라 부르지 못하고’라는 제목의 또 다른 대자보가 공개됐다.

이 역시 익명으로 작성됐는데, 작성자는 스스로 인하대생 B라고 소개했다. B씨는 “대학가에서 여성이 모욕당하고 성적 폭력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우리는 이 모든 사건을 개별화해 개인의 일탈, 숨기고 묻어야 할 오류로 치부하기에 급급하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곳이 인천 하버드 대학교이든, 인천 하와이 대학교이든, 인천 하수구 대학교이든 여기에서 노동자는, 장애인은, 성소수자는, 여성은, 다시 말해 드나드는 모든 이들은 안전해야 마땅하다”며 “명예와 입결, 면접관이 이력서의 학력란을 봤을 때 느낄 인상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라 안전하고 차별받지 않을 환경에서 함께 살고자 하는 모두가 우리”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15일 새벽 인하대 단과대학 건물에서는 1학년 여학생이 동급 남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추락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준강간치사 등 혐의로 가해자인 김모(20)씨를 구속해 검찰에 넘겼다.

인하대 측은 학칙에 따라 가해 학생 김씨의 징계 절차에 착수하는 한편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방지와 성교육 강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또한 보안 강화를 위해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모든 건물의 출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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