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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당시 NHK 보도 내용은 이렇다. 스가 총리가 “코로나19 대책에 전념하기 위해 총재 선거에 불출마한다”며 “다음 주에도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말한다. “이것으로 기자회견을 마치겠다”는 총리관저 여성 직원의 안내가 끝나자마자 NHK는 중계를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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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님! 오늘은 끝까지 대답해 주세요” “정중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등 기자들의 질문이 자막으로 표시된다. 심지어 “책임을 포기하는 겁니까”라는 날이 선 질문이 쏟아지는 것까지 보여준다. 이어지는 앵커 멘트에서도 “설명은 2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났습니다”라며 콕 짚어 지적한다.
◇사퇴 배경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어…커지는 의문
사실 스가 총리의 사퇴 결정은 갑작스럽게 이뤄진 만큼 많은 의문을 남겼다. 전날까지만 해도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에 의욕을 보인 터라 돌연 마음을 바꾼 배경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렸다. 스가 총리가 설명한 대로 “코로나19 대책과 총재 선거를 병행하는 건 어려운 일”인 건 맞지만, 갑자기 어려워진 것은 아닐 터다. 자민당 내부에서도 혼란에 빠질 정도로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데 대한 설명이 충분치 않다는 의문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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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민들이 NHK에 불만을 느낀 지점도 바로 여기 있다. 스가 총리가 국민을 대하는 자세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NHK 보도에서는 전달되지 않을 뿐더러 전달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니혼테레비가 특유의 유머와 저널리즘 정신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보도 위주의 공영방송 NHK는 무성의한 받아쓰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실망은 시청률 추이에도 반영됐다. 도시바의 TV 시청 데이터인 타임온애널리틱스에 따르면 NHK ‘뉴스7’의 시청률은 6%로 니혼테레비 ‘뉴스제로’(4%)를 앞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뉴스7 시청률은 점점 떨어졌다. 중간에 채널을 돌리거나 텔레비전을 끈 시청자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반면 뉴스제로 시청률은 계속 상승했다. 스가 총리의 사퇴 선언이라는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주목도 측면에선 차이를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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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는 과거에도 스가 총리에 대한 무비판적 보도로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5월27일에는 9개 지역에 긴급사태를 연장한다는 그의 발언을 1분15초간 전한 속보로 전한 뒤, “스가 총리의 발언이었습니다”라고 코멘트한 뒤 방송을 마쳤다. SNS에서는 “국민에 설명을 다 하려는 자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저 내용을 라이브 속보로 하는 의미가 있나” 하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미디어 연구자들도 이런 무의미한 언론 노출은 총리가 일하고 있다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며 맹비난했다. 스즈키 유우지 차세대미디어연구소 대표는 “일본 행정의 장인 내각의 총리가 방송에 등장하는 건 무리가 아니다”라면서도 “총리가 발언할 뿐 보도 가치의 판단 없이 속보만 처리하는 건 공평과 공정의 원칙을 흔드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7월8일 1시간을 꼬박 중계한 4차 긴급사태 선언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날은 일본 내륙에 정체전선이 머물며 역대급 폭우가 내려 피해가 예상되는 날이었다. 올 1월 NHK가 발표한 2021~2023 경영계획에서 “목숨과 생활을 지키는 보도를 강화한다”는 선언이 무색한 보도였다. 이전 긴급사태 선언과 대동소이한 스가 총리의 회견을 1시간씩 틀어 놓는 동안 시청자들이 경계를 필요로 하는 긴급 보도를 볼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선 NHK가 스가 총리 받아쓰기 보도로 전락한 건 관방장관 시절 때부터 쌓아 온 NHK 인사들과의 유대관계 때문으로 보고 있다. 미디어 계통 인사들과 특히 돈독한 스가 총리는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 뉴스 앵커를 교체했다는 의혹도 있다. NHK 간판 프로그램인 ‘뉴스워치9’를 4년간 이끌어 온 아리마 요시오 앵커는 과거 논란이 됐던 일본학술회의 회원 임명 거부 문제를 집요하게 물었고, 당시 스가 총리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리마는 올 4월 교체됐다. NHK 측은 “내부적으로 정해진 사안일 뿐, 관저의 압력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말이다. 스가 총리의 사퇴와 함께 NHK는 다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