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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DOGE’ 이끌 지도자를 찾습니다[이근면의 사람이야기]

최은영 기자I 2025.03.06 05:00:00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주한미국대사관의 한국인 직원들도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미 정부효율부(DOGE)발 업무보고용 서신이다. 미 연방정부의 효율화 파도가 한국 땅까지 도달했다. 미 국무부의 구조조정 신호탄이 ‘하나의 목소리’라는 외교 행정 명령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바야흐로 ‘하드보일드 웨스턴 액션’의 1막이 올랐다. 연방 기득권 세력과 ‘총잡이’ 일론 머스크의 대결이다. 피 튀기는 이야기다. 향후 그 전개와 진행,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세계의 자본과 인재의 블랙홀, 정보통신과 인공지능(AI)의 기적적 혁신국, 이 천조국조차 나랏빚을 줄이고 정부 비효율을 제거하기 위한 도전을 시작했다.

그 중심엔 테슬라 최고경영자 머스크가 있다. DOGE의 실질적 수장으로 연방공무원 감축, 계약 재협상, 자산 매각, 지원금 취소 등 전방위적인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지금까지 파악된 해고 공무원 수만 1만 명가량이고 해고가 예고된 이들은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삭감한 연방정부 예산의 20%는 국가 부채를 갚는 데 쓰고 20%는 시민에게 돌려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하니 명분과 실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묘수라 할 만하다.

그런데 구경만 하는 우리는 어떤 생각이 들까. 부럽다. 정말로 부럽다. 그리고 정말로 부끄럽고 자괴감까지 든다. 무지하게 잘사는 나라도 어떻게 하면 공공부문의 군살을 덜어내 정부의 경쟁력을 강화할까 고심하는데 압도적인 저출산·고령화와 중국의 제조업 굴기,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포위당한 한국은 되레 공공의 몸집을 불리고 비효율을 방치하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다.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지금 살길은 민간과 정부 양 측면의 몸집을 가볍게 해 기민하게 대응할 준비를 하는 것인데 현실은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비대함과 저효율로 점철된 우리의 실태는 2018년 107만 명이었던 공무원 수가 2023년엔 122만 명을 넘어섰다. 불과 5년 만에 15만 명이 늘었다.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전임 정부의 의지가(?)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지원해 고용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손쉽게 공무원을 더 뽑는 쪽으로 발현한 결과다. 한번 늘린 공무원 일자리는 영원하다. 한번 채용한 공무원은 정년을 채울 것이다. 퇴임 후엔 사망할 때까지 공무원 연금을 받을 것이다. 공무원 한 명을 뽑고 유지하는 데 70년간 세금이 들어가는 것이다.

공무원 조직과 인력의 규모에 비례해 늘어나는 것은 규제와 간섭이다. 공공기관, 정부 기관은 본질적으로 자기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늘 새로운 규제 거리를 찾고 감시의 수단을 확충한다. 만들어진 규제와 감시, 간섭은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한 근거를 만드는 데 국민의 피 같은 세금과 인적자원이 끝없이 투입되는 악순환을 유발한다. 이러니 모든 법률에 소멸 시효가 필요할 판이다.

사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경향성에 있어서는 보수와 진보가 다르지 않다. 퇴직한 고위 공무원과 선거 공신을 먹여 살리는 것이라는 말까지 듣는 수많은 공공기관들이 유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가 삼성의 인사를 경험하고 초대 인사혁신처장으로 부임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도 정부의 효율성과 경쟁력이었다. 우수한 인재를 공무원으로 뽑아 놓고도 구시대적인 순환보직제라는 틀 안에서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임무를 주는데 정부의 경쟁력이 올라갈 리 만무했다. 그때부터 정부의 재구조화, 리엔지니어링을 수없이 외쳤지만 장관 숫자 한두 개 줄이는 걸 정부의 효율성 증대로 이해하는 한 구조적인 혁신은 불가능하다. 날렵하고 유능한 정부는 주어진 예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에 달려 있다. 때로는 사람을 늘릴 수도 있고 조직을 확대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민간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그동안 국가가 해왔던 많은 분야를 과감히 기업과 시민사회로 이양할 수 있다면 장관 자리 몇 개쯤 늘어나는 건 우리 국민이 얼마든지 용인해 준다.

DOGE가 정부 지출 절감 20%의 목표를 주제로 한 혁신의 영화는 흥행이 어찌 될지 모르지만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기득권을 놓친 자들이 호시탐탐 개혁을 뒤집어엎을 기회를 노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럽다. 우리는 비대해진 공공의 몸집만큼 늘어난 국민 부담에 대해 아무도 칼을 들지 않는다. 정부의 3대 개혁에도 빠져 있으며 오죽하면 언론이 공공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결국 기득권의 저항이다. 내 것, 네 것을 구분하는 갈라치기 정신이 깊게 뿌리 박혀 있는 것이 대한민국을 운영하는 정치권력의 사고방식이다. 이 치졸한 사고방식은 행정부를 넘어 사법부까지도 점령했다. 낭만적인 개혁은 존재하지 않는다. 철저하고도 끈질기게 목숨 거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모든 개혁의 뒤에는 이런 영웅이 꼭 있기 마련이다.

미국 DOGE의 성패는 세 가지에 달렸다. 첫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머스크의 관계의 지속성이다. 관계의 신임이 핵심이다. 둘째, 트럼프의 의지다. 그가 과연 진정한 개혁을 원하는지 아니면 정치적 쇼를 한 것에 불과한지에 따라 성과는 갈릴 것이다. 셋째, 전문가 집단의 적절한 활용이다. 종합적이고 전반적인 시각은 정부보다 오히려 기업가 출신이 훨씬 유리할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머스크의 기발하고도 담대한 계획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정치적 환경과 국민적 호응이 어디까지 따라줄 것인지가 관건이다.

대중은 피가 흐르기 시작하면 돌아설 수 있다. 그렇게 정치가들은 대중을 바라보며 역사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그저 피해 가기 바쁘다. 그러면서 얘기한다. “정치는 생물입니다.” 글쎄 DOGE와 국민의 희생이 생물일까. 국민의 희생을 정치가들이 재단하는 것이야말로 국민 위에 군림하는 행위다.

세상이 격변하고 환경도 바뀌는데 정부는 바뀌지 않는다면 결국 그 부담은 우리 평범한 민초와 다음 세대에게 전가된다. 트럼프와 머스크가 메가폰을 잡은 개혁 영화의 흥행 여부를 지켜보자. 우리도 국민 모두의 부담과 희생을 줄이는, 내일을 위한 정부효율 높이기 ‘X프로젝트’에 한 번 도전해 보자. 그것이 이 시대의 의무이며 역할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를 가능케 할 지도자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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