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 지글러 4년만 국내 개인전
''하베스트'' 등 신작 8점 선보여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 퓨전 추구"
12월 23일까지 PKM갤러리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제가 추구하는 예술은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의 퓨전이에요. 회화를 통해 고전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형태를 탐구하면서 세상과 연결된 무언가를 만들고자 늘 노력하죠.”
영국의 현대미술가 토비 지글러가 4년 만에 돌아왔다. 오는 12월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 ‘파괴된 우상(Broken images)’에서 고전 예술과 현대 기술, 공간의 관계성을 탐구하는 신작 8점을 선보인다. 전시의 제목은 시인 T.S. 엘리엇의 ‘황무지’에서 따왔다. 문명이 야기한 전쟁으로 인해 황폐해진 인간상을 드러냄과 동시에 구원의 소망을 담고 있다.
최근 PKM갤러리에서 만난 토비 지글러는 “회화는 절대 지식 기반적인 것이 아니다”라며 “미술사뿐 아니라 동시대 문화, 풍경과 인물 등 다양한 곳에서 회화적 영감을 얻어 작업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 토비 지글러의 ‘파괴된 우상’(사진=PKM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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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주로 고전 예술의 조형 요소와 의미를 현대적 기법과 재료로 해체하는 작업을 해왔다. 우선 바탕이 될 이미지를 3차원으로 모델링한 후 기존의 조형적 특징을 비워낸다. 이후 젯소(석고와 아교를 혼합한 회화 재료)를 여러 차례 칠하고 사포질을 한 캔버스 위에 매끄럽게 프린팅한다. 이렇게 완성된 격자무늬에 여러 번 붓질하면서 조형 요소들을 다시 조합해 나간다.
2019년 국내 개인전에서 알루미늄판에 손, 발 등의 신체 형상 이미지를 선보였던 그는 이번엔 다시 캔버스 작업으로 돌아왔다. 지글러는 “이전의 알루미늄판 작업은 부식이나 침식과 관련한 작업이었다”며 “이번 회화 작업은 물감을 입히고 제거하는 ‘축적’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표제작인 ‘파괴된 우상’은 7살 무렵 형제, 자매, 부모님과 함께 부엌에 서서 찍은 가족사진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평소 이상적이고 균형잡힌 관계라고 생각했던 가족의 모습이 그 사진에서는 영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눈에서 콩깍지가 벗겨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어느날 어린 시절 사진을 보는데 사진 속의 저는 무언가 힘들어 보이고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이상적인 가족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문득 그 생각이 파괴된 듯한 경험을 했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작업을 했어요. 오래된 사진을 가져와서 격자무늬를 입혔죠. 색은 직관적으로 쓰는 편인데 색채를 통해서 감정적인 온도를 만들어 내려 노력해요. 이 작품을 보는 사람에 따라 새로운 것을 연상할 수도 있을 거예요.”
| 토비 지글러의 ‘하베스트’(사진=PKM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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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베스트’(Harvest)는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소장 중인 작자 미상의 ‘윌튼 두 폭 제단화’ 속 색채와 구조를 가져와 모델링한 작품이다. 잉글랜드 8번째 국왕 리처드 2세와 그의 통치를 축복하는 성모자, 성인들의 세밀한 형상이 그의 손을 거쳐 붉고 푸른 빛의 붓질로 재탄생했다. 지글러는 “내가 하는 작업은 제도적인 것과 기계적인 것, 정돈된 것과 직관적인 것 사이의 줄다리기”라며 “새로운 표현으로 재탄생한 회화 작품들을 보며 자유로운 예술적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 토비 지글러의 개인전 ‘파괴된 우상’ 전경(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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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현대미술가 토비 지글러(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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