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경험·목격한 김초롱씨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시달려
2차 가해에 상처…PTSD 진단 후 치료
"외면하기 싫어…올해도 이태원 갔다"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어쩌면 정말 한 발짝 차이였어요.”
지난해 10월29일 밤, 김초롱(33)씨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 호텔 골목에 있었다. 핼러윈 데이를 맞아 친구들과 코스튬 복장을 하고 여느 때처럼 즐겁게 보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하다”고 느꼈다. 누구도 통제하지 않는 골목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 사이에 파묻혀 숨을 쉬기 어려웠다. 어느 순간엔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인파에 떠밀리길 반복하던 중, 인근 술집에서 문을 열어준 덕분에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도착한 경찰과 구급대원이 “조속히 귀가하라”고 외칠 때에도 159명이 압사하는 일이 벌어졌으리라곤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어디 큰불이 났나’ 싶었다.
| 책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저자 김초롱(33)씨(사진=방인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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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밀톤 호텔 골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자 현장을 목격한 당사자인 김씨는 참사 당일부터 319일간의 기록을 담은 책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를 출간했다. 김씨는 19일 서울 마포구에서 진행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 및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그날 죽음을 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특히 ‘심폐소생술(CPR)을 해달라’는 외침을 듣고도 현장을 빠져나왔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마음의 짐이 됐다. 김씨는 “내가 대신 죽을 수도 있었는데 ‘내가 저 사람 삶의 일부를 가져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희생자에게 사과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참사 후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진단받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괜찮아질 만하면 원위치로 돌아가는 스스로가 답답했다고 했다. 무엇보다 ‘애초에 그런 곳을 왜 갔냐’, ‘놀다가 죽은 걸 어쩌라는 거냐’는 주변의 말들이 큰 상처로 남았다. 그는 “사람들이 참사의 본질을 파헤치기보다 혐오하는 방식으로 모든 사건을 처리한다고 느꼈다”며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으니까 아직까지도 바뀌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우연히 휴대폰 앨범에서 매년 핼러윈 데이 때 이태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고서야 “내가 잘못한 게 아니구나”라고 깨달았다고 말했다.
| 이태원 참사 1주기(10월 29일)를 10일 앞둔 1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사고현장에서 시민들이 추모메세지를 살펴보고 있다.(사진=방인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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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올해도 핼러윈 데이를 앞두고 이태원을 다녀왔다.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은 장소일 수 있지만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쉬쉬하며 덮을수록 우리 모두에게 부정적인 영향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오히려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쪽으로 가야 다른 형태로 발전도 되고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인생에서 그날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울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김씨는 고민 끝에 “그러고 싶지 않다”고 말을 뗐다. 그는 “그날의 일이 제 삶에서 중요한 변곡점으로 남길 바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일로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 것도 사실”이라며 “인간에 대해 배우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그날의 일이 지금보다 성숙한 모습으로 발현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자신과 함께 참사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향해서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굉장히 힘들어서 두문불출하고 있다고 들었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웃을 일을 조금씩 만들어 보시면 종국에는 어떤 형태로든 밝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오지 않겠나”라고 위로를 건넸다.
| 책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 저자 김초롱(33)씨(사진=방인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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