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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학사의 설문 문항을 보면 황당하다. 이들이 내놓은 질문은 모두 15개. 그중 내용 몇 개를 옮기자면 이렇다. “평생 농사만 짓던 농부가 범죄를 저질러 5년간 복역하고 나왔는데 다시 농사를 못 짓게 하는 건 범죄냐, 정의냐”고 묻는다. 다음 문항에서는 그 농부를 도와준 정미소를 압박하는 것은 범죄인지, 정의인지 질문한다.
다른 질문들은 더 노골적이다. “추문에 휩싸인 시인이 쓴 시를 출간한 출판사를 압박하는 것은 월권인가”라고 묻는가 하면, 이런 폭력행위가 일어나는 이유로 “정치, 부화뇌동, 무지, 내로남불,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 등의 제시어에서 고르라는 식이다.
우리 국민의 ‘국민성’을 비판하는 문항도 있다. ‘징벌의 법칙에 따라 지은 죄에 대해서는 그것에 합당한 죗값을 치러야 하지만, 그 이상의 이중처벌이나 기본권 등을 박탈하는 불법적 행위는 후진국민성의 발현이다’라는 문장에 ‘찬성’ 또는 ‘반대’를 택하게 했다.
이 회사의 대표인 윤한룡은 헌법 21조인 ‘출판의 자유’를 무기로 들고나왔다. 그는 초지일관 ‘달’(출판의 자유권)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일부 언론인들이 자꾸 ‘손가락’(성추문)만 가리키며 시비를 건다는 것이다.
그의 지적대로 출판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는 게 맞다. 출판사도 기업이기에 영리활동을 해야 한다. 작가 또한 창작활동을 할 권리가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독자 역시 불매든 비판이든 거부할 권한이 있다는 점이다. 실천문학사가 내놓은 설문은 대중에게 사실을 호도하고 잘못된 정보를 주입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기득권이 된 문단의 주류가 권력이 된 ‘괴물’ 앞에서 침묵했음을 우리는 목격했다. 여전히 화두에 답하지 않고 솔직한 목소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정작 성추문을 고발했던 시인은 작품을 내주겠다는 곳이 없어 직접 출판사를 차려 자신의 시집을 내야 하는 게 우리 민낯이다. 고은 시인 또한 ‘제대로’된 사과 한마디 없었다. 성추행 의혹을 부인하며 벌인 법정 싸움에서 패한 후에도 그렇고, 복귀에 대한 비판이 거센 지금도 아무런 말이 없다.
“왜 출판사만 갖고 그러냐”는 푸념은 통하지 않는다. 대상이 실천문학사라면 더 그렇다. 실천문학사는 1980년대 창립 이래 민주진영과 진보세력을 대변하는 출판사 중 한 곳으로 꼽혀왔다. 실천문학사의 이 같은 대응은 ‘시인’ 고은에 대한 평가를 다시 쓸 기회를 놓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성 없는 가해자를 어떤 제재 없이 복귀시키는 문단의 구조적 권력을 스스로 단죄할 기회마저 놓치게 만들었다. 이쯤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진짜 권력자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