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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대전 등 충청권의 소아청소년과 1차 의료기관들이 줄폐업하면서 유아와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의료 공백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동네 의원급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이 사라지면서 몇몇 종합·대형병원에 대한 환자 쏠림현상이 가속화돼 진료 및 수술을 위한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리고, 야간 진료에 대한 진료비 인상 등의 카드를 거론하고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대안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통계청, 대한의사협회,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4만 9000명으로 전년도 26만 600명과 비교해 1만1500명(-4.4%) 감소했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최근 5년 동안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연평균 7.8% 감소했다. 이에 따라 소아청소년과 병·의원 수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18년 2221개소이던 전국 소아청소년과 의원 수는 지난해 기준 2135개소로 86개소가 줄었다. 지역별로는 대전의 경우 2018년 114개소였던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지난해 96개소로, 충남은 103개소에서 93개소로, 충북은 74개소에서 72개소로 모두 줄었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맞물리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소아청소과 의료기관의 최근 5년간 개업은 519곳인 반면 폐업은 550곳으로 개업보다 폐업 비율이 높아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시작이었던 2020년과 2021년에는 이 같은 현상이 심화됐다. 동네 소아과 의원(개인병원)은 2020년 103곳이 문을 연 반면 154곳이 간판을 내렸다. 2021년에는 93곳이 개원하고, 120곳이 폐원했다. 의료기관의 주수입원인 진료비에서도 소아청소년과는 더욱 열악해졌다. 필수진료과목인 내과와 외과, 산부인과 등 소아청소과 진료비가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최근 5년간 연평균 인당 진료비가 감소한 유일한 진료과목이 바로 소아청소년과이다. 결국 동일한 조건이라고 해도 타 진료 과목 보다 낮은 진료비는 동네 소아과가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이다. 동네 소아과가 점차 사라지면서 각 권역별 대형·종합병원으로의 쏠림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대전에 거주하는 시민 유지후(46)씨는 “불과 몇년전만 해도 아이가 아프면 동네 소아과를 찾아 바로 진료받을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평균 3시간 이상 대기해야 하는 것인 현실”이라며 “직장에서 눈치를 보며, 일찍 나와도 소아과를 한번 방문하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8~9시가 기본이다. 저출산 문제는 결국 이런 부분들이 맞물리면서 어쩔 수 없는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소아청소년과의 불합리한 구조적 모순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소청과를 기피하는 의사들도 늘고 있다. 지난 18일 충남대병원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서울 서대문을)은 “충남대병원이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정원 13명 중 단 1명도 채우지 못했다”며 “충남권 어린이 의료체계의 붕괴가 아닌지 걱정된다”고 성토했다. 김 의원은 “최근 5년간 충북대병원과 충남대병원에 어린이 환자가 각각 23만명, 62만명 정도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다”며 “그런데 어린이 환자 평균 입원 일수를 살펴보면 충북대병원은 2.94일인 반면 충남대병원은 20일이 훌쩍 넘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검토 중이지만,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린다고 소아 청소년과의 전공의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며 “지방 필수 의료 인력에 대한 특별한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엠블병원 조명구 병원장은 “최근 정부가 소아청소년과의 야간 진료에 대해 수가(건강보험 재정에서 병의원에 지급하는 의료행위 대가) 인상을 언급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지금 의료현장에서는 야간은 커녕 주간에도 진료를 볼 의료진이 없어 난리를 겪고 있다”며 “현재 의료보험 수가를 적용해 병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의사 1인당 하루 평균 150~200명 이상을 진료해야 한다. 이를 근무시간으로 환산하면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이상 근무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현 소아청소년과의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조 병원장은 “몇년째 수가는 현실화되지 않고 있고, 출산율 감소에 보호자들의 민원 증가 등은 젊은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를 지원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라며 “반면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 비급여 항목이 많은 과목으로 전문의를 하는 것이 삶의 질 차원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그는 “하루에 수백명씩 진료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의료사고’라는 이유로 형사처벌 받는 상황에서 누가 순수한 열정만 갖고 소아과를 지원할 수 있겠느냐”며 “지금 당장 이 문제를 바로잡아도 의료 현장에 공급되는 전문의는 최소 10년 후에나 가능하다는 점에서 왜곡된 의료 환경을 현실·정상화하기 위해 정부나 정치권이 빨리 나서주길 바란다. 오랜 시간 사명감을 갖고, 병원을 지켜오고 있지만 점점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