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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동의 한 모텔을 운영하던 이씨는 2017년 8월 장씨를 고용했다. 2019년 8월 장씨는 모텔 투숙객 A씨가 시비를 걸고 숙박비 4만원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둔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한강에 버린 혐의(살인·사체손괴 등)로 이듬해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A씨 배우자와 아들은 장씨와 그의 고용주인 모텔 업주를 상대로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장씨와 이씨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책임 범위를 놓고 다른 판단을 내놨다.
1심 재판부는 장씨와 이씨의 연대채무 범위가 동일하다고 봤지만 2심에서는 이씨의 책임 정도를 70%로 줄였다. 2심 재판부는 “사장으로서 직원이 투숙객을 살해하리란 걸 예견하고 방지하기는 사실상 어려웠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소송진행 중 유족들이 국가로부터 받은 유족구조금 약 8800만원을 두 사람의 배상금액에서 공동 공제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배상금에서 구조금을 공제한 자체는 타당하지만 모텔 업주의 부담분에서 공제한 것은 잘못됐다며 일부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유족구조금은 피고 장씨가 단독 부담하는 부분에서만 공제해야 하고 모텔 업주의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할 수 없다”며 “공동으로 채무를 부담하는 부분에서 공제하면, 책임제한으로 인해 사용자보다 다액의 채무를 부담하는 범죄자가 무자력일 때 그 위험까지 부담하게 돼 구조피해자나 유족의 채권자로서 지위가 약화된다”고 했다.
이어 “구조피해자나 유족이 국가로부터 소극적 손해배상의 일부에 불과한 범죄피해구조금을 수령한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액채무자인 범죄자의 단독 부담 부분이 소멸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의사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대법원 판결은 국가배상 청구가 아닌 손해배상 청구 사건에서 유족구조금을 손해배상액에서 공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명시한 첫 판시다. 대법원은 “손해배상에 앞서 구조금을 먼저 받은 사람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함으로써 범죄피해자 보호에 충실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