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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초에 100만달러가 왔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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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자I 2006.03.11 17:22:23

달러 시대 35년..외환 딜링룸 24시
빨리 주문 내려고 끝 자릿수 둘만 입력... 국내 외환시장 하루 평균 21조원 거래

[조선일보 제공] 지난 2월 21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 19층 외환 딜링룸에서 대기업 A사와 연결된 핫라인 전화기가 울렸다. “5개 쳐주세요.(‘500만달러 팔아주세요’의 은어)” 수출대금으로 들어온 달러를 부품업체 결제를 위해서 원화로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외환은행 딜링룸은 삼성전자, 현대차, 현대중공업, 포스코, SK글로벌, 가스공사 등 주요 수출입 대기업 50여곳과 핫라인이 연결돼 있다.

주문을 받은 기업 담당 딜러가 “500보트(bought)”라고 외쳤다. 외환시세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던 구길모(37) 원·달러 담당 선임 딜러는 “구(9)”라고 대꾸했다. 시장환율이 1달러당 969원에 형성돼 있다는 의미다. 딜러 2명이 서로 “돈(done)”이라고 말하고, 기업이 가진 500만달러를 받고 은행은 48억4500만원(500만달러×969원)을 내주는 거래가 성립됐다. 잠시 후 구 딜러는 500만달러를 다른 은행에 팔았다.


             ▲ 외환은행 딜링룸. 모니터, 전화기, 키패드로 책상이 가득차 있다.

이처럼 한 은행 내에 기업과 은행 사이의 거래를 담당하는 외환딜러(corporate dealer)와 은행 간 거래를 담당하는 외환딜러(inter-bank dealer)가 따로 있다. 둘을 모두 통칭해서 ‘외환딜러’라고 부른다. 기업 담당 딜러는 기업에서 달러의 ‘사자’ ‘팔자’ 주문을 받아 은행간 외환딜러와 거래를 하고, 은행간 딜러는 기업의 주문량에다가 자신이 판단해서 거래할 수 있는 한도를 더해서 은행 사이에 열리는 외환시장에 참가한다. 딜러가 자기 판단 아래 보유할 수 있는 달러의 한도는 은행마다 다르나, 딜링룸당 1억~2억달러 정도를 보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외환은행 딜링룸에는 기업 담당 딜러 5명, 시장 담당 딜러 10명, 본·지점 담당 딜러 3명 등 18명의 외환딜러가 있다. 딜러 수로 국내 최대 규모다. 통상 국내은행은 10명 내외의 외환딜러가 있다. 외국계은행 서울지점은 1~2명이 있는 경우도 있다.

‘달러당 969원’이라는 교환비율(환율)은 ‘1달러의 가격이 969원’이라는 뜻으로 은행 간 외환시장에서 매도 측과 매수 측의 가격이 맞으면 결정된다. 달러를 사려는 사람이 많으면 달러의 가격인 원·달러 환율은 올라가고, 반대의 경우엔 떨어진다. 청과물 시장에서 가격 흥정을 통해 ‘배 한 상자에 4만원’ 식으로 결정되는 것과 같다. 은행 창구에서 고객이 달러를 살 때는 환율이 이보다 조금 높고(달러가 비싸고), 달러를 팔 때는 환율이 이보다 조금 낮다(달러가 싸다). 은행 입장에선 달러를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마진을 남기는 것이다.

은행 간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수시로 변한다. 2월 21일에는 오전 9시 달러당 969.5원으로 개장, 한때 달러당 966.6원까지 떨어졌다가 오후 3시 달러당 968.6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 환율의 변동 제한폭은 ±2.25%였으나 위기 중에 ±10%로 대폭 확대했고 그해 12월 아예 변동 제한폭이 폐지됐다.

우리나라에서 은행 사이의 공식적인 외환시장은 서울외국환중개, 한국자금중개 등 2개 회사가 각각 열고 있다. 공식 외환시장에는 56개의 국내 은행, 외국계 은행 서울지점 등이 참가하고 있다. 거래 단위는 100만달러이기 때문에 아무나 참여할 수는 없다. 공식시장 외에도 은행끼리 직접 전화, 로이터 딜링 머신(외환 거래 전용 채팅기계) 등을 이용해서 직거래하기도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 규모는 223억달러(21조여원)로 전년(186억달러)보다 20% 증가했다. BIS(세계결제은행)의 2004년 조사에 따르면 세계 시장의 하루 평균 외환 거래액은 3조1000억달러로, 그 중 한국 시장의 비중은 0.6%(220억달러)에 불과했다.

은행 간 외환시장에 참가하는 외환딜러는 24시간 긴장의 연속이다. 원화와 달러의 거래는 한국 시장뿐 아니라 뉴욕, 홍콩, 싱가포르, 런던 등 주요 세계 외환시장에서 쉬지 않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딜링룸에서 만난 7년차 외환딜러 구길모 과장은 “거래 단추를 누르는 0.1초 사이에 100만달러가 왔다갔다 한다”며 “기업의 매매 물량, 외국인 주식 자금, 해외 시장의 움직임 등을 실시간으로 챙겨야 하는 긴장의 연속 속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구 과장 앞에는 주문 전용 단말기 모니터, 로이터의 외환 정보 모니터, 인터넷 전용 모니터 등 5개의 모니터가 있다. 각 모니터에는 ‘24시간 가동 중’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책상 위는 외환 거래 전용 키패드, 싱가포르의 외환 브로커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보이스박스(말로 거래하는 기계), 한국은행·중개회사로 연결된 핫라인 전화기, 다른 은행 딜링룸과 연결되는 딜링폰 등으로 꽉 차 있다.

외환딜러들은 주문 입력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거래할 때 환율의 마지막 두 자릿수만 입력한다. 예를 들어 1달러당 969.5원에 100만달러를 사고 싶으면, 외환 거래 전용 키패드로 ‘9.5’만 입력하고 ‘사자’ 버튼을 누른다.

오전 9시~오후 3시까지 열리는 국내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의 변화는 서울외국환중개, 한국자금중개의 주문 전용 단말기에서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해외시장에서 환율 변화는 주로 로이터에서 제공하는 시세로 확인한다. 퇴근한 후에는 런던·뉴욕 시장의 현지 브로커(거래를 중개하는 사람)들이 시세가 급변할 때마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보내준다. 구 과장은 “많으면 하룻밤 사이에 런던·뉴욕 시장의 시세 변동을 알려주는 50여건의 문자 메시지가 들어온다”며 “자다 말고 뉴욕에 전화를 걸어 거래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외환시장에 ‘팔자’고 내놓는 달러의 원천은 수출대금, 외국인 주식투자자금, 외국인 직접투자금 등이고, 달러를 ‘사자’는 세력은 수입대금을 지불하기 위한 수입업체, 주식을 매각하거나 배당금을 받은 외국인투자자, 유학생, 해외여행객 등이다.

은행간 외환시장에는 은행 외에도 ‘외환당국’으로 불리는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이 중요한 참가자다. 재정경제부는 국채를 발행해서 조성한 37조여원의 외국환평형기금을 가지고 달러를 사고 팔 수 있다. 한국은행은 돈을 새로 찍어 내거나 2000억달러(195조원)의 외환보유액를 가지고 시장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 또 재정경제부나 한국은행의 고위간부가 “환율이 너무 낮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등 의견을 제시하는 구두 개입을 통해서 시장의 환율을 움직이기도 한다.

하지만 외환당국의 실체를 외환시장에서 직접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한국은행의 경우는 서울외국환중개 등에 공식 참가자로 등록돼 있지만 자기 이름으로 거래하는 경우는 없다. 시중은행을 통해서 주문을 낸다. 재정경제부도 마찬가지다. 정책 의도를 시장에서 완벽하게 파악해버리면 시장이 한쪽으로 쏠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외환당국 10억달러 개입’ 등의 소문만 무성하지 확인은 불가능하다.

한편 미국의 중앙은행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주로 구두 개입을 하며, 일본의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구두 개입을 할 뿐만 아니라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해서 달러를 사고 판 현황까지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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