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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이주민 정책은 분야별 수요와 지역의 상황을 고려해서 추진되고 있다. 최근에는 지자체가 지역의 고유한 상황을 반영하여 이주민을 수용하는 지역특화비자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이주민이 살아가야 할 지역사회가 이민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범정책이다.
그러나 수용 가능 이민의 규모에 대한 논의는 정부 정책에서 찾기 힘들다. 법무부의 사회통합 프로그램, 교육부의 다문화교육, 여성가족부의 다문화인식 개선 프로그램은 지속되어 왔으나, 이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수용 역량을 강화했는지에 관한 판단이 어려운 실정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이주민 수용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모래성처럼 위태로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다문화’나 ‘조선족’ 같은 용어가 한국 사회에서 이미 혐오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는 당사자들의 호소가 간절하다. 난민 신청자에 대한 반감도 심상치 않다. 2018년 제주에 도착한 예멘인들이 한국 사회에 난민 지위를 요청하자 공개적인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젊은 무슬림 남성들이 대부분인 난민 신청자에 대해 여성 안전을 위협한다는 비난도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전국의 공단과 농어촌에서 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인 무슬림 청년 노동자들을 여성 안전의 위험으로 보는 주장은 제기되지 않았다. 무슬림 청년을 출신 국가를 기준으로 일부만 거부하는 것은 인종주의일 뿐이다.
한국 사회가 여러 이유로 이민정책을 추진하며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제 우리 모두 그들과 함께 사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문화가 다른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말처럼 단순한 일은 아니다. 종교, 신념, 가치관, 생활양식 등 모든 면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차이를 극복하며 함께 공존하는 태도와 능력을 배워야 한다. 가짜 뉴스를 분별할 수 있는 지식도 필요하며 무엇보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서로의 이웃이 되겠다는 의지도 강해야 한다.
이러한 역량은 문화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실천 속에서 강화될 수 있다. 이주민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만이 문화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국가나 민족은 더는 동질적 문화의 단위가 아니다. 한 국가 안에 수십 개의 민족이 모여 살기도 하고, 국제이주의 증가로 다양한 문화를 지닌 이주민이 국적을 취득하고 새로운 국민으로 살기 때문이다. 민족도 마찬가지이다. 한반도 밖에 살고 있는 700만 재외동포들은 세대와 지역에 따라 문화가 다르다. 한민족이지만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양한 현실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문화다양성은 한민족과 이주민 간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의 내적 다양성도 포함해야 한다. 세대, 지역, 젠더, 계층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국 문화 그 자체가 다양함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한국사회의 모습은 한국 문화 내부의 다양성과 이주민의 문화다양성을 함께 존중해야 한다. 즉 한국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다양성의 관점에서 보호받고 존중받는 사회로 나가야 한다.
유엔은 2013년 반기문 총장이 글로벌교육우선구상을 발표한 이후 세계시민교육을 강화해 왔다. 지속가능발전목표 4.7은 세계시민교육을 문화다양성 교육이나 지속가능발전교육과 함께 중요한 글로벌 교육의제로 명시하고 있다. 세계시민은 나와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보다 정의롭고, 공정하며,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천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주민과 동행하는 한국 사회는 모두에게 낯선 새로운 사회이다. 이주민이나 한국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함께 준비해야 도달할 수 있는 사회이다. 사회통합 프로그램과 다문화교육은 이주민과의 동행을 위한 범사회적 교육 프로그램으로 혁신되어야 한다. 이주민을 ‘다문화’라는 용어로 별도로 호명하거나 사회통합의 부담을 이주민에게만 부과하는 현재의 정책은 우리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것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주민이나 한국사회의 기존 구성원 모두 문화다양성을 존중하고 실천하는 세계시민으로 성장할 때 이주민과 동행하는 한국 사회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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