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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그야말로 적요한 산길이다. 숲길에 들리는 건 그저 청아한 물소리와 새소리뿐. 가끔 길섶의 야생화 꽃잎 사이로 토종 꿀벌이 잉잉거리는 소리가 뒤섞일 뿐이다. 오지 중의 오지라는 경북 울진의 왕피천계곡과 신선계곡의 풍경이다. 이제 정말 사람의 손발이 닿지 않은 마지막 남은 물길을 따라가는 오지 트레킹. 그 어떤 소리도 없는 그런 길이다. 자동차나 그 어떤 기계음의 방해도 없이 온전히 제 발자국소리만 데리고 적막강산 계곡의 물길을 따라간다. 그러다 너럭 바위를 발견하기라도 하면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계곡에 발 한 번 담궈봐도 좋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간섭받을 일이 없어 더 좋은 곳. 깊은 산중에 그동안 교만해진 나를 내려둔다. 나 자신도 거대한 자연의 일부에 불과했던 것을.
▲바람과 물, 억겁이 시간 품은 ‘왕피천계곡’
울진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야성미 넘치는 계곡트레킹이다. 울진의 계곡이라면 불영계곡을 먼저 떠올리지만 오지계곡의 대명사로 불리는 왕피천도 빼놓을 수 없다. 왕피천은 트레킹 마니아들이 최고로 꼽는 곳. ‘계곡트레킹 1번지’ ‘계곡트레커의 로망’이라는 별칭이 붙어다닌다.
왕피천은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해 울진군 서면 왕피리와 구산리를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 61㎞의 그리 길지 않은 물길이다. 험준한 산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둘러싸여 접근이 쉽지 않아 우리 땅 최고의 오지이자 청정지역으로 꼽힌다. 국내 최대 규모의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지금도 산양, 수달 등 멸종위기 동물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트레킹 코스는 근남면 구산리 상천동에서 서면 왕피리 속사마을까지 5㎞ 구간. 차도가 없어 호젓한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왕피천 트레킹을 즐기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물길을 따라 자갈밭을 걷고 바위를 오르는 계곡트레킹과 계곡을 따라 산자락에 조성해 놓은 생태탐방로를 따르는 방법. 물론 왕피천의 비경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물길 바로 옆을 걷는 것이 좋다.
여기서 ‘팁’ 하나. 왕피천 트레킹은 교통이 불편해 물길과 탐방로를 적절히 이용하는 게 좋다. 굴구지마을에서 상류에 있는 속사마을 쪽으로 간다면 갈 때는 탐방로를 이용하는 게, 올 때는 물길을 따라 걸어오는게 조금 더 편하다.
왕피천의 으뜸 절경은 용소. 굴구지마을에서 상류 쪽으로 4㎞ 떨어져 있다. 수심이 왕피천에서 가장 깊은 약 10m에 이른다. 물길이 암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위험하기 때문에 계곡트레킹을 하더라도 이 구간만은 생태탐방로로 우회하는 것이 좋다. 구명조끼와 튜브를 이용해 건너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물이 휘도는 소는 안전을 위해 피하는 게 정석이다.
생태탐방로는 계곡에서 조금 떨어진 산자락을 따라 이어진다. 가파른 구간도 일부 있지만 계단을 깔거나 밧줄을 쳐놓아 위험하지는 않다. 하지만 탐방로를 이용한다면 왕피천의 비경을 제대로 감상하긴 힘들다. 탐방로가 산으로 올라가는 지점에서 물가로 난 길을 따라가면 용소를 만날 수 있다. 입구인 상천동 초소에서 용소까지는 약 30분 정도 걸린다. 용소를 지나 상류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탐방로를 타야 한다. 탐방로 중간중간에 왕피천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용소 위쪽으로는 쉬기 좋은 학소대가 있다. 널따란 바위인 학소대에 앉아 바라본 용소는 또 다른 용의 모습이다. 제일 앞의 바위는 용의 머리를 닮았고 그 뒤로 몸통처럼 보이는 암벽들이 줄지어 서 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띠는 것이 왕피천 용소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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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들의 놀이터 ‘신선계곡’
신선계곡은 울진의 숨어 있는 명품계곡이다. 왕피천 계곡도 처음 들어봤다는 사람이 많지만 신선계곡은 왕피천 계곡보다도 훨씬 덜 알려져 있다. 신선계곡은 백암온천이 솟는 백암산(1004m) 북동사면의 좁고 긴 형태의 골짜기. 대부분이 암반으로 이뤄져 있고 그 사이에 크고 작은 소와 폭포가 어우러져 말 그대로 비경을 빚어낸다.
신선계곡 트레킹은 미끈한 나무데크 위를 걷는 코스. 그렇다고 신선계곡이 유순한 계곡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너무 가파르고 험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 나무데크를 설치한 것이다. 신선이라는 이름도 사람들은 들어가기가 어렵고 신선들이나 놀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붙였다고 한다. 워낙 외진 곳이어서 대한제국 말기 의병장 신돌석이 몸을 숨길 수 있었고, 계곡 상류 ‘독곡’이라는 곳에서는 1970년대 중반까지 화전민이 밭을 일구며 살았다. 그렇다 보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로 전문 트레커만 찾았던 곳이다. 지금은 나무데크와 다리 덕에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게 됐다. 물론 계곡의 원시림을 훼손했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나무탐방로는 지형에 따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깊은 계곡 속으로 이어진다. 가파른 비탈에 놓인 나무데크 아래로 펼쳐지는 풍경은 절경의 연속이다. 신선계곡을 더욱 멋지게 만드는 것은 금강소나무다. 이 계곡은 온통 우람한 금강송의 바다다.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는 ‘매미소’(馬飮沼)를 지나 나무데크에 오르면 곧 신선탕이 보인다. 예로부터 신선이 목욕하며 놀았던 곳이라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신선탕은 아름다운 경치를 여러 사람이 즐긴다고 해서 ‘다락소’(多樂沼)라고도 부른다. 재미있는 이름은 이뿐만이 아니다. 하늘을 가리는 수직절벽은 ‘참새눈물나기’라고 한단다. 하늘을 나는 참새도 눈물을 흘릴 정도로 험준한 곳이라는 뜻이다. ‘다람쥐한숨재기’는 암석이 수십개의 층계를 이루고 있어 다람쥐도 한달음에 뛰어오르지 못하고 숨을 돌려야 오를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신선계곡 역시 최고의 비경은 용소다. 그래서 나무데크가 이어지는 계곡 끝까지는 편도 6㎞에 달하지만 대개는 용소까지만 돌아본다. 계곡입구에서 용소까지는 왕복 4㎞ 정도. 예전에는 계곡 아래로 내려가 용소를 정면에서 바라봤지면 지금은 계곡을 잇는 나무다리 위에 올라 공중에서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왕피천의 용소가 웅장한 규모로 찾은 이들을 압도한다면, 신선계곡의 용소는 그에 비해 규모는 적지만 깊게 파인 절벽이 아스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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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풍기IC나 영주 IC에서 36번 국도를 타고 울진으로 향하면 된다. 동해고속도로를 이용한다면 동해 IC에서 7번 국도를 따라갈 수 있다.
△먹거리=요즘 울진의 대표 먹거리는 단연 물회다.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과 조막하게 썬 졸깃한 회가 초여름 잃어버린 입맛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죽변리의 정훈이네횟집(054-782-7919)이 맛있다.
△잠잘 곳=신선계곡 쪽 한화리조트 백암(054-787-7001)은 울진의 대표적인 숙소다. 리조트 뒤편 온천학습관 마당에선 온천수가 솟는다. 계곡트레킹 등으로 지친 몸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 무료 족탕시설도 갖췄으니 발의 피로를 풀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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