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통상 외교의 역량과 국가 위기 대응 능력을 시험할 한미 관세협상이 다음 주 시작된다. 트럼프 미 행정부가 촉발한 관세 전쟁으로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75개 상호관세 대상국 중 한국이 사실상 최선두로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4일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한국·일본·영국·호주와 인도 등 다섯 우방국을 협상의 최우선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일 발표 후 90일간 유예된 상호 관세 시행을 앞두고 협상 우선권을 받았다는 점에서 다행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권 반응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그제 “권한도 책임도 취약한 대행 정부가 막대한 국익이 걸린 관세 협상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 관세 정책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협상을 서둘러야 할 이유도 크지 않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잦은 말 바꾸기 탓에 미 국채와 달러 값이 급락하는 등 국제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졌던 사실을 감안하면 일리 있는 말이다. 관세 전쟁의 결과를 아직 점치기 어려운 판에 협상을 서둘러서 불리한 카드를 받는다면 협상은 하지 않는 것만 못할 것이다.
하지만 협상을 미룰 수 없음은 민주당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주어진 시간도 상호관세 유예 기간뿐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으로선 한미자유무역협정(FTA)발효 후 최근 10년간 연평균 100억달러 규모의 대미 무역흑자를 거둔 처지에서 협상 요구를 뿌리칠 명분이 없다. 협상을 거부할 경우 닥칠 고율의 관세 폭풍과 유무형의 보복 조치는 FTA 폐기 등 더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응할 것은 응하되 조선업 협력 확대 등 다른 카드로 국익을 최대한 지키는 게 현명한 대처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민주당의 태도는 한 대행에 대한 국민 지지를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정치적 계산이나 의심 섞인 눈초리로 관세 협상을 바라볼 때가 아니다. 정부와 여야가 원팀으로 소통하고 지혜를 한데 모아야 위기를 넘어설 수 있다. 밖에서 닥친 위기 앞에서 자중지란으로 무너져 국민과 기업에 큰 짐을 떠넘기는 일은 없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