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악어떼 노니는 호수 즐기며 왕의 온천서 마음 녹이다

강경록 기자I 2025.01.31 05:00:00

왕도 쉬어간 물의 도시, 충주로의 온천 여행
조선 태조 이성계도 치료하러 온 수안보온천
철저한 관리로 어디서나 동일한 수질 경험
국토의 중심에 세운 통일신라의 중앙탑
최근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월악산 악어봉
폐광에서 살아 숨쉬는 역사공간된 활옥동굴

[충주(충북) 글·사진=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내 나이가 벌써 여든이야. 솔직히 내 나이로 안 보이지? (하하).” 수안보 온천 입구 물탕공원 산책길을 따라 걷다 보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족욕장이 눈길을 끈다. 족욕장에 앉아 유난히 환한 미소를 짓고 계신 한 할머니가 기자를 맞이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 뜨끈한 온천수를 휘저으며 수안보 온천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최소 30분은 뜨거운 물에 발을 담가야 효과가 있다니까, 여기 와서 한번 앉아봐.” 친근하게 옆자리를 내어주는 그녀의 권유에 따라 발을 담그자 온천수의 온기가 몸과 마음 깊숙이 스며드는 듯했다.

족욕탕에 앉아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바쁘고 고단했던 일상이 잠시 멀어지는 기분이다. 주변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새소리가 조화를 이루는 이곳. 발끝으로 전해지는 따뜻함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잊게 한다. 여행길에 만난 소소한 여유와 행복이다. 이 족욕탕은 주민과 관광객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무료 시설이다. 지난해까지는 4월부터 10월까지만 운영했지만, 올해는 한겨울에도 개방해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다만 겨울철에는 족욕탕 중 두 곳만 낮 12시부터 운영한다. 짧지만 차가운 겨울 공기 속 온천의 따스함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수안보 온천 마을입구에 있는 무료 족욕체험장
수안보온천마을 전경


◇겨울의 따스함을 품은 수안보 온천

수안보 온천은 예나 지금이나 치유와 쉼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전만큼 사람들로 북적이지는 않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마을 곳곳에서 느껴지는 온천수의 따스함과 마을 주민들의 정은 변함없다. 조선 시대에도 피부염 치료를 위해 태조 이성계가 찾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이곳은 역사가 깊다. 조선왕조실록과 청풍향교지에 기록된 이야기는 물론 헌종 시대 학자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도 이곳을 “수질이 좋아 병자들이 몰려드는 곳”으로 소개하고 있다. ‘왕의 온천’이라 불릴 자격이 충분한 이유다.

현재 수안보 온천은 53℃의 약알칼리성(pH 8.3) 온천수로 유명하다. 칼슘, 나트륨, 불소, 마그네슘 등 피부에 좋은 성분을 풍부하게 함유한 이 온천수는 피부를 매끈하게 만들어준다. 충주시에서 직접 관리하며, 호텔과 대중탕 어디서나 동일한 수질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철저한 관리 덕분에 수안보 온천은 신뢰받는 여행지로 자리 잡고 있다.

수안보의 또 다른 매력은 고즈넉한 풍경이다. 월악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이 마을은 번잡하지 않아 느긋하게 거닐기 좋다. 산자락 아래를 천천히 걸으며 복잡했던 마음도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오래된 온천 마을의 정취와 함께 느낄 수 있는 이 고요함은 수안보만의 독특한 힐링 요소다.

충주 중앙탑 사적공안에 있는 칠층석탑(중앙탑). 통일신라 시대에 세워진 소중한 국가유산이다.


◇물의 도시 충주, 자연이 빚은 아름다움

충주는 물이 빚어낸 도시다. 달천, 요도천, 남한강이 도시 곳곳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충주를 감싸고 있다. 충주호(청풍호)는 그 중심에 자리 잡은 보석 같은 존재로, 이곳 풍경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충주의 상징적인 명소 중 하나는 중앙탑 사적공원이다. 통일신라 시대에 건립된 칠층석탑은 충주 사람들에게 단순한 국가유산을 넘어 소중한 쉼터다. 이 탑은 신라 원성왕이 국토의 중심을 찾기 위해 북과 남에서 각각 걷기 시작한 이들이 만나는 지점에 세워졌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높이 15.4m의 이 석탑은 신라 석탑 중 가장 높으며 경주 다보탑과 유사한 외관을 지녔다. 1917년 복원 작업 중 발견된 서류편과 동경은 고려 시대의 흔적을 담고 있어 역사의 층위를 보여준다.

월악산 악어봉 전망대에는 흘러내린 산자락이 악어가 모여 있는 듯한 모습인 ‘악어섬’을 감상할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충주호 주변에는 악어가 산다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물론 실제 악어는 아니고 충주호에 접어드는 산줄기가 악어를 닮아 붙은 이름이다. 이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 월악산 악어봉(447m)에 오르면, 물속을 유영하는 악어 같은 산줄기 풍경이 펼쳐진다. 최근 전국적인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이곳은 새벽부터 많은 이들이 찾아와 충주의 자연을 만끽한다.

악어봉이 다소 부담스럽다면 종댕이길을 추천한다. 충주호 종댕이길 1코스는 7.5㎞의 원점 회귀 코스로, 약 3시간 30분이 소요된다. 길을 따라 걸으며 충주호를 배경으로 한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잘 정비된 덱 길은 자연과 가까이에서 호흡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며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충주호를 어루만지며 걷는 종댕이길에서 만난 충주호 출렁다리


◇동굴 속 숨겨진 보물, 활옥동굴

종댕이길에서 나와 활옥동굴로 향한다. 활옥동굴은 마치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문을 여는 기분이었다. 흔히 동굴이라고 하면 어둡고 서늘한 자연 동굴을 떠올리겠지만, 활옥동굴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다. 과거 활석을 채굴하던 인공 동굴이 지금은 독특한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길이가 무려 55㎞에 달하는 거대한 동굴의 스케일은 상상을 초월했다. 주 동굴은 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도 충분히 남을 정도로 웅장했다. 마치 거대한 지하 세계를 탐험하는 느낌이었다.

활옥동굴은 단순한 동굴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광물 자원이 수탈당하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1912년 일본인에게 넘어간 목벌동 활석광산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이르러 국내 활석 생산량의 70% 이상을 책임지던 주요 광산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 활석 가격 폭락과 경영난으로 인해 운영을 중단해야 했다. 이후 이 광산은 새로운 가치를 찾아 나섰다. 단순한 폐광이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역사의 공간이자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관광지로 거듭난 것이다.

활옥동굴 내부에 있는 카약체험 시설


동굴 내부는 밝고 따뜻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다. 자연 동굴 특유의 어둡고 음침한 느낌 대신, 활석으로 이뤄진 밝은색의 벽면과 은은한 조명이 어우러져 신비롭고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동굴을 걸으며 마주한 다양한 공간들은 각각 고유의 매력을 뽐냈다. 과거의 채굴 장면을 재현한 전시공간, 광물을 끌어올리는 거대한 권양기, 그리고 화려한 조명으로 꾸며진 야광도료 공간까지. 단순히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체험을 통해 동굴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동굴 속 호수에서 카약을 타던 시간이었다. 투명한 아크릴 카약을 타고 물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경험은 동굴이라는 독특한 환경 덕분에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잔잔한 물 위로 드리운 조명과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가 한데 어우러져 마치 꿈속을 떠다니는 듯했다.

거대한 규모의 활옥동굴에는 카약체험은 물론 다양한 콘셉트의 일루미네이션과 와인 저장소 등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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