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공명당 연립정권의 참패로 끝난 지난 27일 일본 중의원 선거 결과는 한미일 3국의 경제는 물론 외교·안보에도 상당한 변화를 안길 전망이다. 두 당이 2009년 이후 15년 만에 과반 의석(233석)확보에 실패하면서 이시바 시게루 내각이 식물 상태에 빠지고, 정국이 요동치게 된 것이 우선 큰 변수다. 금리 인상을 통한 금융 정상화를 선호한 이시바 총리의 경제 정책에 혼선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유례없이 탄탄한 팀워크의 한미일 3각 공조도 앞날을 낙관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의 방위비 증액을 압박하는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곧 치러질 미국 대선에서 앞서가고 있다는 여러 분석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이 눈여겨볼 대목은 자민당의 참패 원인이다. 1955년 창당 이후 정권을 내준 적이 단 두 차례에 불과했던 자민당이 받아든 성적표는 191석에 불과했다. 무려 56석이 날아갔다. 이유는 정치 자금 스캔들과 망가진 민생에 있다는 게 일본 언론의 분석이다. 구린 돈과 고달픈 삶에 대한 국민의 분노·한숨이 오만한 정권에 몽둥이를 들었다는 얘기다. 자민당은 아베파를 중심으로 후원금 일부를 장부에 기록하지 않고 빼돌리거나 허위 기재한 혐의가 검찰 수사로 드러나자 의원 39명에게 탈당 권고를 내렸다. 징계받은 의원들이 줄줄이 무소속 출마했지만 비자금 연루 의원 46명 중 60% 이상이 낙선했다.
이시바 총리는 취임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민생 회복의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최단명 위기에 몰렸다. 만성적 엔화 약세로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서 물가가 뛰었고 실질 임금이 2년 넘게 하락한 상태에서 당장 특효약을 기대하긴 어렵다 해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지 못한 게 민심을 등 돌리게 했다고 볼 수 있다.
부패와 경제 실정에 대한 민심의 심판은 일본 중의원 선거가 우리 정부와 정치권에 던진 교훈이다. 소모적 정쟁에 매달리며 민생을 팽개친 여야와 검은돈 유혹에 길들여진 정치인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돌아올 결과는 일본과 다를 바 없다. 침체 수렁의 내수와 내리막길의 수출, 초저성장 쇼크를 눈앞에서 보고도 앞날을 낙관하는 현 정부 역시 심판을 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