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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언격(言格)을 만드는 시작 '호칭'

최은영 기자I 2024.10.04 05:00:00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

[박용후 관점 디자이너]호칭(呼稱)은 상대방을 부르는 말이다. 그 호칭을 통해 화자(話者) 사이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고 화자의 인품도 가늠할 수 있다. 한 사람을 부르는 호칭에 따라 이어지는 다음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고 부르는 사람 사이에 쌓였던 관계에 따라 호칭이 달라지기도 한다.

연애할 때 누구 누구 씨라고 부르던 사람이 ‘자기’가 되고 ‘여보’가 되고 ‘누구 엄마’가 되기도 한다. 호칭은 대화를 통한 관계가 시작되기 전 가장 앞선 말이다. 관계의 시작을 만드는 것이 바로 호칭이다. 그래서 기업들도 호칭을 정하는 규칙을 만들 때 매우 신중하게 접근한다.

이번 국회에서 대정부질문을 하는 의원이 국무위원들을 부르는 호칭을 유심히 살펴봤다. 일부 의원은 국무위원을 부를 때 ‘님’자를 다 빼고 불렀다. 그러나 국무위원들은 누구나 국회의원들을 향해 ‘의원님’이라며 깍듯하게 존칭을 썼다. 한 젊은 국회의원은 자기보다 한참 연배가 높은 국무위원을 ‘총리’, ‘장관’으로 부르고 언성을 높이며 하대(下待)하는 태도를 보였다. 난 그 국회의원이 했던 질문이 억지스러웠다는 걸 떠나서 그의 말을 듣는 내내 그 호칭이 매우 불편했다. “나는 국민의 대표이니 그래도 된다”는 식의 기고만장(氣高萬丈)한 태도가 눈에 매우 거슬렸다. 그 의원이 주장하고 싶은 의견보다는 그의 무례함이 앞서 보였고 그 호통에 그가 바꾸고 싶은 대한민국의 모습은 실루엣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떤 젊은 의원은 의정 활동을 하는 동안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여러 차례나 당당하게 던졌다. 그것이 허위나 거짓으로 판명된 것이 여러 건이었다. 그러나 그 의원의 사과나 미안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의원의 태도를 살펴보면 그가 하는 의정 활동도 어느 정도는 결과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 의원을 포함한 무례했던 의원들은 대부분 정쟁의 중심에 있거나 정쟁을 만들어내는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부류의 의원들은 대부분 무례하고 염치 없는 인성을 갖춘 경우가 많았다. 막말은 기본이고 증거, 근거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말들을 마구 뱉어낸 뒤 이후 허위로 밝혀져도 일말의 미안함조차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 부류의 의원들은 국회의원은 무례해도 된다는 법이 마치 국회법에 보장돼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 무리의 인성적 공통점은 국무위원을 모욕하거나 반대편 입장에 서 있는 누군가를 호통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행동하면 그들을 지지하는 자들의 응원 목소리가 커지는 것처럼 여기는 듯했고 실제로 그런 결과가 일부 나타나기도 했다. 국무위원들에게 호통을 치고 가르치는 것처럼 훈계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을 보면 ‘언제쯤 우리는 선진국 정치의 품격을 느껴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말은 텍스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말은 어느 맥락(脈絡)에서 그 말을 했느냐도 중요하고 어떤 태도(態度)로 이야기하는지에 따라 텍스트의 진짜 의미를 지울 수도 있다. 젊은 의원이 자기보다 한참 선배인 국무위원을 무례하게 대하면서 당당해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 그런 태도가 아니더라도 증거, 근거, 논거를 갖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

지난해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이었던 원희룡 장관에게 했던 질의현장은 질의를 통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건방지지 않게, 큰소리로 목청을 높이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답을 얻고 그 답을 법을 근거로 반박하며 논리의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났다. 그저 상대방을 무시하고 비하하고 소리 지르는 그런 부류의 의원들과는 격이 달랐다. 과연 국민은 두 부류의 국회의원 중에서 어떤 쪽의 손을 들어줄까. 또 어떤 의원을 좋아할까. 설득은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얼마 전 모 일간지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쌈박질만 하더니… 韓 국회 신뢰도 OECD 28위 꼴찌권’. 그들은 과연 이런 기사에 부끄러워하기는 할까. 아마도 자기의 부끄러움을 살피는 염치 DNA가 없는 그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것 같아 왠지 입맛이 씁쓸하다. 국회의원들의 언격(言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격이 높아지면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미간 주름도 조금은 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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