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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블랙 스완'에 놀라지 않으려면

김정남 기자I 2019.07.26 06:00:00

예상 못한 위기 언급하지만
경제위기 가능성 거의 없어
대외부채·외환보유액 등
특정 변수 밀착 관리 중요
투자심리 위축엔 주의해야



[손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우리나라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휘말린 경험이 있다. 두 번의 위기 모두 국내 요인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축통화를 가지지 못한 소규모 개방경제의 원죄가 작용했다.

국가 경제의 위기 관리는 조직의 위기 관리와 원칙상 다르지 않다. 위기 상황을 조기에 파악하고 위기의 전이를 최대한 억제한 후 경제를 정상으로 복원하는 것이다. 사후적으로는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 분석하고 국가 경제의 평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종적으로 위기에 대비해 각종 경제 제도와 원칙을 정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경제위기 관리의 첫 발은 위기 발생 가능성을 상시 점검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경제위기 경보는 주로 거시경제변수를 투입한 모형을 이용한다. 과거에 발생했던 위기에 기초해 앞으로 위기 발생시에도 경제변수가 비슷한 패턴을 보일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구축된다. 그러다보니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상황이 발생할 때 위기경보 모형은 침묵할 수 있다. 또 실제 위기가 발생하기까지 시차도 과거와는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조기경보 모형에 의존하는 동시에 중요한 특정 변수를 밀착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변수들을 밀착 관리해야 할까? 기업이나 개인이 은행에 대출을 신청하게 되면, 은행은 신청자의 세 가지 상황에 대해 집중한다. 신청자가 이미 일으킨 대출 규모와 담보 여력이다. 그리고 기업은 사업성, 개인은 소득원이다. 이를 국가 경제 전체에 그대로 적용해 보자. 대출 규모는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대외부채 비율, 특히 단기외채의 규모다. 담보 여력은 외환보유액과 안정적인 경상수지 흑자 규모다. 사업성(소득원)은 은행의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비율을 보면 된다. 사업(소득)이 부진하면 대출이 부실화되고 이는 은행 대차대조표의 위험자산 규모에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경제심리 관리도 중요하다. 경제위기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하면 경제활동이 별다른 이유 없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때문이다. 투자심리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와 마찬가지로 경제변수에 바로 영향을 준다. 특히 소규모 개방경제의 모습을 가진 나라는 글로벌 투자자금 흐름의 변화에 취약하다. 투자심리가 위축되면 투자자의 신뢰는 과신으로 해석되면서 붕괴의 과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이 끓다가 기화점을 넘어서면 수증기로 사라지는 것과 같다. 투자심리와 경제체질에 따라 기화점이 다를 뿐이다.

최근 언론에 ‘경제위기’ 표현이 부쩍 늘었다. 그러나 조기경보 모형이나 밀착 변수의 움직임을 보면 위기라기보다는 경제활동 둔화와 경기 수축에 가깝다. 가계와 기업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그 부실은 금융기관으로 집중된다. 금융기관에서 자체적으로 부실을 해결하지 못하면 폭탄은 정부로 넘어간다. 가계와 기업에 문제가 생기고, 금융기관이 이를 흡수하지 못 하고 정부도 수습하지 못하는, 즉 그 누구도 해결 못하는 위기 상황이 곧 닥칠 거라고는 보기 어렵다.

백조(白鳥)는 흰 새라는 뜻이다. 모두 흰색이라고 믿었으니 이름도 그렇게 지어졌을 것이다. 호주에서 검은색 백조가 발견된 후에도 백조의 이름은 그대로 유지되고 이 기이한 새를 ‘검은 백조(black swan)’라고 불렀다. 블랙 스완은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은유적 표현이다. 월가에서는 이를 예상치 못 한 금융위기를 언급할 때 쓴다. 발생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충격이 큰 상황을 일컫는다. 2008년 금융위기는 블랙 스완에 가까운 것으로 간주된다.

최근 언론과 금융가에서 예견하는 경제위기는 가능성이 0에 가까운 블랙 스완이다. 경제의 위기 상황은 역사적으로 되풀이돼 나타났다. 따라서 위기가 올 거라고 예견하는 전문가들은 언젠가는 자신의 예측이 옳았다고 강변할지도 모른다. 장래에 폭풍우가 몰려올 거라는 일기예보도 언젠가는 적중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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