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재개발지역 건물 붕괴사고가 비리 복마전으로 확인되면서 정비업계 전반에 만연한 조합과 철거업체의 유착 관계가 집중 조명되고 있다. 철거비리를 예방하기 위해 법까지 개정됐지만, 고착화된 관행을 뿌리 뽑기엔 턱없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
정비업계에서는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비리는 아직도 만연한 고질적 병폐라고 입을 모은다. 과거 정비사업장에서 조합이 설립되면 사업시행인가를 받고 시공사 및 철거용역업체 등을 선정해왔다. 이 과정에서 철거업체들은 도시정비구역 지정 전부터 조합장 등에게 접근해 로비를 시작하고 유착관계를 형성했다.
이러한 비위가 끊이지 않게 되면서 법 개정도 이뤄졌다. 조합과 철거업체 간의 직접 계약을 막기 위해 시공사에서 철거공사를 사업에 포함하도록 도시및주거환경기본법(도정법)이 2017년 개정됐다.
도정법 제 29조 제 9항에 따르면 시공자와의 계약시 철거와 석면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도록 명문화 했다. 석면 조사·해체·제거공사도 시공사에 맡겨야 할 철거공사에 해당되므로 조합이 분리발주할 수 없다. 부칙 제2조에는 이 법 시행일인 2018년 2월 9일 이후 최초로 시공자를 선정하는 경우부터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조합과의 유착 등 비위를 막기 위해 철거 작업에 대한 관리·감독 등의 책임 전반을 시공사에 넘긴 조치다. 하지만 이번에 사고가 난 학동4구역의 경우 관련 법이 시행되기 전에 HDC현산에서 시공사로 선정돼 조합이 다원이앤씨에 석면 해체를 따로 발주하면서 유착 관계가 드러난 사례다.
문제는 법이 시행 후 시공자가 선정된 이후에도 조합장이 시공사를 주물러 철거업체 선정을 주도하는 것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법과 상관없이 실상은 여전히 조합은 철거업체와 짬짜미를 일삼고 있다”면서 “시공사도 조합의 입김을 절대 무시할 수 없어 이러한 비위를 눈감고 조합 구미에 맞는 철거업체로 맞추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조합·시공사·철거업체 컨소시엄 같은 존재”…한 몸으로 움직여
시공사의 입장은 어떨까. 법 개정으로 철거공사에 대한 책임이 시공사에게 있는 만큼, 철거업체 선정에 대한 투명성은 한층 강화됐다고 한다. 건설사 한 관계자는 “지금은 철거업체를 선정할 때 실적을 토대로 공정성을 기하고 있다”면서 “현장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선정하는 게 아닌 본사 자체서 개입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장의 목소리는 이와는 딴 판이다. 철거업체 선정과정은 상식 이하로 비합리적이며, 들러리를 앞세운 ‘짜고 치는’ 입찰도 무수한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정비업계 관계자는 “이미 내정된 철거업체를 두고 경쟁업체를 들러리 세우는 입찰경쟁이 허다하다”면서 “내정업체가 실적이 좋으면 실적으로 ‘커팅’을 하거나, 실적이 낮으면 법인소재지가 수도권에 있어야 한다고 정한다든지 등 조합 임의로 내정업체를 위한 선정조건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합과 시공사, 철거업체가 ‘컨소시엄’처럼 조직적으로 운영된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재개발·재건축 분야를 주로 담당해 온 법무법인 정향 김예림 변호사는 “재개발 현장을 보면 조합과 시공사, 철거업체 뿐만 아니라 범죄예방까지 한 팀으로 꾸려 움직인다”면서 “이 과정에서 용역대금 부풀리기 사례도 빈번하고 일부는 조합장이 이득을 취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알 수 없는 기준으로 공정하지 않게 철거업체를 선정하면 결국 조합원 갈등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면서 “도정법 일부를 개정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역부족이다. 구청이나 경찰서 차원에서 관리감독을 명확히 하는 조직체계가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