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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원전 잠정중단' 꺼낸 文대통령의 3가지 고뇌

최훈길 기자I 2017.06.29 05:30:00

①원전 최대 밀집지역 320만명 안전한가
②원전 폐기하면 대규모 정전 없을 것인가
③신재생으로 전환하면 전기요금 급등하나

[세종=이데일리 최훈길, 김영환 고준혁 기자] 청와대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잠정 중단한 배경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고뇌가 작용했다고 밝혔다. 원전 안전에 대한 우려와 함께 전력수급과 비용 리스크에 대한 고민이 커 공론화 과정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靑 “국가대계 떠넘겨? 대통령의 고뇌 때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한 고리 1호기 원전의 영구정지 기념행사에서 “신고리 5·6호기는 안전성과 함께 공정률과 투입·보상 비용, 전력 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 고려해 빠른 시일 내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28일 오후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의 고뇌, 우리 사회가 원자력발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고뇌가 (신고리 5·6호기 공사의) 잠정중단이라는 어려운 결정으로 끌고 가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27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국무위원들과 논의 끝에 공사를 잠정중단하고 공론화위원회 등을 통해 9월까지 공사 재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이후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오후 4시 긴급브리핑을 열고 이 결정을 발표했다.

이 같은 소식이 갑자기 알려지자 찬반 양론이 불붙었다. 공사 중인 원전 건설을 중단한 것은 유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탈핵 신호탄’이라며 환영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반발도 작지 않았다. 특히 “정부가 비전문가들에게 국가 대계를 무책임하게 떠넘겼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28일 기자들을 만난 건 이 같은 비판에 해명하고 문 대통령의 의중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업계가 궁금해하는 향후 로드맵 등 구체적인 정책 설명은 없었다. 청와대 측은 전기요금 부담 등 비용 논란에 대해서도 “반박·해명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이 고위관계자는 “(공사를) 중단할지, 계속할지 하는 문제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면서 “(책임을 떠넘겨) 비전문적으로 결정하자는 게 아니다”며 공론화에 나선 배경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주목되는 점은 결정 배경에 문 대통령의 고뇌가 작용했다는 해명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신고리 5·6호기 관련해 고심하는 부분은 크게 3가지다. 우선 문 대통령의 고민은 안전성 문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신고리 5·6호기) 반경 30km 이내에 320만명이 7기의 원전이 가동되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원전이 집중된 곳”이라며 “부산에선 이 문제가 현실적 위협이고 갈등”이라고 설명했다.

◇“부산, 세계서 원전이 가장 밀집된 곳”

경주 지진이 발생한 활성 단층대 부근으로 지진 계속 발생했다. 이 부근에 신고리 5·6호기 등의 원전이 위치해 있다.[사진=환경운동연합]
신고리 5·6호기는 부산 기장군에 위치해 있다. 고리 1·2·3·4호기, 한빛 1·2 호기, 월성 1호기 등 준공된 지 30년이나 넘은 원전 7기는 경주, 부산, 전남 부근에 밀집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인 부산 영도도 이들 원전의 반경 30km 이내에 포함돼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가장 좁은 지역에 원전과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국민들의 뜻이 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며 공론화 배경을 설명했다.

두번째 고민은 전력수급 문제다. 청와대는 전력수급을 1순위 고려사항으로 꼽았다. 이 고위관계자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원 이전에 전력수급에 차질이 있느냐, 없느냐가 첫 번째”라며 “여기에 차질이 있으면 아무리 좋아도 시행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규모 정전(블랙아웃)이 일어날 정도로 급진적인 탈핵 정책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신고리 5·6호기의 설비용량은 2800MW다. 신고리 5·6호기가 없어도 현재 예비전력(28일 기준)은 1119만kW(1만1190MW·15.1%)로 정상 상태다. 비상 상태인 예비율(5% 이하)보다 10% 이상 여유가 있다. 평소에는 전력이 남는 상황인 셈이다.

그러나 한여름이나 한겨울에는 그렇지 않다. 지난해 전력을 가장 많이 썼던 날은 8월12일이었다. 당시 전국의 발전소를 모두 가동했지만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전력 소비가 늘어 예비력은 7212MW까지 떨어졌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안정적인 예비력은 4000MW 이상 수준이다.

건설·폐기되는 발전소를 고려하지 않는 전제 하에 신고리 5·6호기 설비용량 규모의 발전소 2~3대만 사라져도 전력수급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전력난을 야기하지 않는 전제 하에 (탈핵·탈석탄) 계획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野 “年 전기료 19만원↑” Vs 靑 “예단할 수 없어”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중단하고 석탄화력, LNG, 신재생으로 교체했을 경우 소요되는 추가 비용. 신재생으로 대체했을 경우 연간 4조6488억원의 비용이 발생했다.[단위=억원, 출처=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
세 번째 고민은 비용 문제다. 원전 안전이 우려돼 전력수급에 이상이 없는 선에서 건설을 중단하더라도 비용 부담 문제가 작지 않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은 28일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백지화하고 석탄화력, 액화천연가스(LNG), 신재생 발전 등으로 대체할 경우 연간 최대 4조6000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호당 연평균 전기요금이 최대 10.8%(18만9445원)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정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015760)에 의뢰해 계산한 결과다.

이는 정부가 밝힌 손실액과 격차가 크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지난 27일 브리핑을 통해 “신고리 5·6호기 공사가 중단될 경우 총 손실규모는 약 2조 6000억원”이라고 밝혔다. 이는 이미 집행된 공사비 1조6000억원에 보상 비용까지 합친 규모다. 브리핑 당시 홍 실장은 총 손실액에 정 의원이 지적한 전기요금 등의 추가 부담액을 밝히지 않았다.

이 추가 비용은 전기료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기념행사에서 “산업용 전기요금을 재편해 산업부분의 전기과소비를 방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문 대통령이 주택용 전기요금을 인상할 것이라고 밝힌 적은 없다. 만약 정 의원의 추산대로 전기요금이 오를 경우 주택용 전기요금도 인상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지난해 12월 누진제 개편으로 인하된 주택용 전기요금을 문재인 정부에서 원상복귀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한지’ 묻는 질문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건 예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신고리(건설을) 중단할 경우 (발생할) 많은 것에 대해서 제가 반박하거나 해명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이날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전기요금 등 가계 부담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청와대 측의 확답은 없었다.

신고리 건설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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