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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올해 초부터 불거졌던 ‘4월 경제위기설(說)’이 막상 4월에 들어서자 힘을 잃고 있다.
당초 위기설은 환율조작국 지정과 대우조선해양(042660) 부도 등의 우려에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에 이은 10년 주기설까지 결합해 나왔던 것인데, 그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발(發) 지정학적 위험까지 더해 위기설의 논리를 짜맞추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아니면 말고식(式) ‘공포 장사’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실체 불분명한 위기설은 우리 경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환율조작국 우려 과장됐다”
①환율조작국 지정
9일 경제계에 따르면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간 정상회담 결과를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가장 의미있는 일은 (양국간 무역 불균형을 해소해 보자는) ‘100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 세부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다만 100일의 시간을 두고 머리를 맞대자는 정상간 합의인 만큼 당장 이번달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은 희박해졌다는 평가다. 우리나라 역시 그 영향권에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은 △대미(對美) 무역흑자 200억달러 초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흑자 비중 3% 초과 △한 방향의 반복적인 외환시장 개입 등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10월 미국의 환율보고서 발표 당시 3561억달러의 대미 무역흑자(2015년 6월~2016년 6월)로 환율조작국 아래 단계인 관찰대상국에 지정됐다. 그러나 이 기간 중국의 GDP 대비 경상흑자 비중은 2.4%였다. 3%를 넘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적용해보면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은 애초 낮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대미 무역흑자 302억달러, 경상흑자 비중 7.9%로 관찰대상국에 이름을 올렸다. 한 정책당국 인사는 “이번달에도 세 가지 요건 중 두 가지만 걸릴 것”이라고 했다. 실제 지정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 외에 독일 중국 일본 대만 스위스 등이 환율조작국이 아닌 관찰대상국으로 될 수 있다”고 했다.
환율조작국이 될 경우 그 피해가 얼마나 될지도 따져볼 문제다. 2015년 제정된 미국 교역촉진법은 그 제재를 △해당국 기업의 미국 연방정부 조달시장 참여 제한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환율 압박 등으로 명시하고 있다. 최강대국인 미국과 각을 세우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제재를 받을 우려는 있겠지만, ‘눈에 보이는’ 피해는 나라를 뒤흔들 위기 수준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또다른 당국 고위인사는 “환율조작국 걱정이 그 실체보다 훨씬 큰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②한·미 FTA 재협상
위기설의 한 축이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은 최근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번달 15일이 FTA 발효 5주년이었다는 게 그 근거였는데, 정작 미국은 재협상 판을 깔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의 주요 타깃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중국이며 한·미 FTA 재협상까지 거론될 확률은 낮다”(이시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애초 적지 않았지만, 재협상론은 위기설 광풍에 올라타 삽시간에 번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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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서 북한發 위기 커지지만…
③대우조선 유동성 위기
4월 위기설의 또다른 진원지 중 하나는 대우조선해양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이 이번달 21일 만기인 4400억원의 회사채를 막기 어렵다는 우려였다. 대우조선해양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 우리 경제에 최대 59조원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게 금융당국의 추산까지 나왔다.
대우조선해양의 명운은 17~18일이 중대 분수령이다. 정부는 최근 모든 채권자의 자율적인 채무조정 동참을 전제로 5조8000억원의 지원안을 결정했다. 은행과 사채권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채무조정에 동의할 경우 당면한 위기는 넘길 수 있다. 문제는 회사채를 보유한 기관투자자들이 이에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국민연금이 대표적이다. 17~18일 있을 사채권자 집회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다만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의지가 워낙 강한 만큼 당장 충격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발 불확실성은 계속 우리 경제를 괴롭히겠지만, 이번달부터 당초 위기설이 현실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④북한發 지정학적 위험
최근 그나마 크게 불거지는 게 지정학적 위험이다. 당초 4월 위기설의 주요 축은 아니었는데, 요즘 부쩍 거론되고 있다.
미·중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6일 오후 들어 국내 금융시장에는 미국의 북한 선제타격설이 빠르게 돌았다. 서울채권시장이 대표적이었다. 가장 먼저 외국인이 반응했다. 외국인은 지난달 중순부터 국채선물을 순매수하는 기류가 강했다. 하지만 지정학적 위기가 퍼지자 곧 국채선물을 내던졌다. 6일 당시 외국인은 3년 국채선물을 6170계약 순매도했다. 이에 국내 채권금리는 상승 마감(채권가격 하락)했다. 글로벌 채권시장은 강세(채권금리 하락)를 보였지만 국내는 반대로 약세장이었던 것이다. 채권시장 한 관계자는 “과거 북한 이슈에 무덤덤했던 것과는 다소 분위기가 달랐던 것 같다”고 했다.
같은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도 전거래일 대비 8.80원(0.78%) 오른(달러화 강세) 1133.2원에 마감했다. 최근 완연한 원화 강세 기류 속에 원화자산의 인기가 갑자기 하락했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북한 위험에 전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전했다.
이런 우려는 이번달 11일 김정은 집권 5주년과 15일 김일성 출생 105주년 등 북한의 대형 이벤트들과 맞물려 더 번지고 있다.
다만 동시에 ‘과잉 반응’이라는 평도 적지 않다. 또다른 채권시장 참가자는 “위기가 증폭됐다고 말하기에는 원·달러 환율이 상승한 정도가 그렇게 크지는 않다”고 했다. 채권시장도 쇼크 수준은 아니었다. 별다른 근거 없는 루머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극단적인 무력 도발만 아니라면, 국내 금융시장은 웬만한 북한 리스크에 내성이 생겼다는 관측도 있다. 북한은 기념일이 집중된 4월 군사 도발을 감행한 적이 더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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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없는’ 위기설이 위기 불러
경제계에서는 오히려 무분별한 위기설의 폐해를 거론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레 나온다.
우리 경제 안팎에 각종 불확실성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를 경계하는 것은 상시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정책당국의 당연한 임무다.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확대 재생산하는 위기설은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다. 한 인사는 “4월 위기설은 처음부터 그 실체를 느끼지 못 했다”면서 “자극적인 네이밍(이름 짓기)으로 자꾸 ‘위기, 위기’ 하다가 정말 위기가 오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임원은 “만에 하나 환율조작국 지정과 대우조선해양 도산이 함께 온다고 해도 과거 외환위기 혹은 금융위기 같은 경제위기가 올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