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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한 애플이 무릎 꿇은 이유는?

문정현 기자I 2012.05.15 07:53:38

애플 소형 전자제품 A/S 한국식으로 바꿔
“정부 압박·경쟁사 위상 제고가 원인인 듯”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5월 15일자 8면에 게재됐습니다.


[이데일리 문정현 기자] 세계 어디서든 ‘마이웨이’를 고집하던 애플이 한국 시장에서 꼬리를 내렸다. 무성의하고 불편한 품질보증(A/S) 정책을 고집해 소비자의 불만이 폭주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애플이 별안간 “문제가 있는 제품은 한 달 안에 공짜로 새 제품으로 바꿔주겠다”고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등 떠밀기(?)가 발단이 됐지만, 애플의 변심엔 또 다른 이유도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올해 1월 공정위는 보도자료를 하나 냈다. 소형 전자제품의 A/S 기준이 공정위의 소비자분쟁 해결기준보다 불리하다면 제품 용기에 다른 점을 구체적으로 적으라는 것. 대상 품목은 휴대폰·내비게이션·노트북 컴퓨터·카메라·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 등 5개였지만 애플 제품을 타깃으로 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그로부터 3개월. 공정위에 전화가 걸려왔다. 애플이 자진해서 아이패드·아이팟·맥북의 A/S 기준을 국내에 맞추겠다고 통보했다. 기존의 리퍼 제품 교환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세계에서 가장 유리한 수준의 A/S를 적용받게 됐다”고 자평했다. 현재 애플은 이탈리아 중국 터키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같은 A/S 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과거 A/S 문제로 국정감사에 임원이 증인으로 소환됐을 때도 꼿꼿하게 “내 법을 따르라”던 애플이 생각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 애플의 변신은 삼성 때문?

김정기 공정위 소비자안전정보과장은 “제품 용기나 별지에 자사의 A/S가 불리하다고 별도로 표시하는 게 부담이었던 것 같다”며 “지난해 10월 아이폰 A/S 정책을 바꿨기 때문에 아이패드나 맥북의 A/S를 굳이 바꾸지 않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숨은 이유는 따로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과장은 “국내 IT 시장은 제품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라는 인식이 있어 애플에도 중요한 시장이라는 점이 한 이유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회사 한 관계자는 “그동안 애플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독주해 왔는데, 삼성의 약진으로 양강구도가 된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출 비중은 작지만, 상징성이 큰 국내 IT 시장에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란 얘기다.
 
애플이 ‘포스트 잡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친소비자 전략으로 선회한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팀 쿡 체제 아래 애플은 디자인보다 성능을 강화하고, 전 세계 A/S 비용을 인하하는 등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앞선 통신회사 관계자는 “(애플이) 국내 마케팅 인력도 보강하는 등 예전과 다른 모습”이라고 말했다.
 
◇ “일단 바꿨지만” 입 나온 애플

배경이 무엇이든 이번 A/S 기준 변경으로 애플의 속내는 편치 않아 보인다. 애플은 지난 4월부터 소리 없이 A/S 정책을 바꿨다가 공정위의 설득 끝에 한 달 늦게 공개했다. 다른 나라 A/S 정책에 미칠 파급 효과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애플 관계자는 “다른 회사도 A/S가 바뀌었다고 따로 공지하는 경우는 없다”며 “제품을 집중적으로 홍보하지, 서비스를 따로 홍보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 같은 지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발끈했다.
 
A/S 불만에 대해서도 여전히 억울해하고 있다. 앞선 관계자는 “소비자가 가지고 오는 제품의 99.7%가 출고 당시 하자가 아닌 소비자 과실 때문”이라며 “리퍼도 새 제품인데 한국 소비자들은 재활용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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