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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에 신탁하세요" 무연고 어르신 돕는 배광열 변호사[따전소]

성주원 기자I 2024.03.26 05:55:00

가족 없는 노인, 유언은 사후 집행 어려워
생전에 신탁해두면 고인 뜻대로 처분가능
"많은분께 영향 주고싶어 제도개선도 노력"

[논산=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상담할 때는 ‘네, 좋아요’라고 하셔도 나중에 ‘안 할래요’라고 하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몇 번 더 만나서 신뢰를 쌓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무연고 어르신들의 사후 재산 처분을 위한 신탁계약 설명을 도와 달라는 요청을 받고 충남 논산까지 무료 법률상담에 나선 배광열(37·변호사시험 3회) 사단법인 온율 변호사는 지난 21일 2명의 어르신을 만나고 난 뒤 다음 번에 또 방문해야 할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상담에는 온율 김영미·성유진 변호사도 동행했다.

배광열(오른쪽 첫번째) 변호사가 충남 논산시 죽림노인양로원에서 어르신의 사연을 듣고 신탁계약 등을 설명하고 있다. 사단법인 온율 제공.
80대 후반의 최영길(가명) 할아버지는 가족이 없는 무연고자다. 1년 전 그가 처음 충남남부노인보호전문기관의 도움을 받게 됐을 때만 해도 주민등록번호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의 지문조회로도 기록을 찾지 못해 결국 재판 과정을 거쳐 호적을 새로 만들었다. 현재 그의 수중에는 현금 400만원 정도가 있다. 무연고자가 세상을 떠날 경우 남은 재산을 처리하는 일은 꽤나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데, 생전에 신탁계약을 해놓으면 본인의 뜻대로 재산이 사용될 수 있다. 다만 어르신이 신탁계약과 후견인계약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고 동의하는 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다.

배 변호사는 “신탁을 통해서 하려는 것은 생전에 어르신이 원하는 대로 돈을 쓸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사후에도 어르신 뜻대로 쓰여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며 “유언은 책임지고 집행해줄 사람이 없으니 유언대로 되기가 굉장히 어렵지만 신탁은 믿을 수 있는 누군가를 지정해 이렇게 해달라고 재산을 맡기는 것이기 때문에 훨씬 안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또다른 상담자였던 70대 중반의 이광삼(가명) 어르신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본인은 미혼이지만 3명의 여동생을 두고 있었다. 이 어르신은 과거 들어놓은 국민연금이 지급되고 있고 월 30만원의 노령연금도 받고 있어 모아둔 돈이 적지 않다. 이 어르신은 왕래가 뜸해진 여동생들에게는 “서로 걱정할 것 없이 남남으로 살자”고 했다며 사후 남은 재산은 그동안 자신을 돌봐준 양로원에 남기고 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배 변호사는 여동생들에게도 재산을 일부 나눠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수차례 권유했다.

상담 종료 후 그 이유를 묻자 배 변호사는 “무연고 어르신들은 그나마 본인의 의사만 확인하면 되는데 가족이 있는 경우는 간단하지 않다”며 “신탁계약에 대해 오해할 소지가 있는 만큼 다시 와서 의사를 더 확인하고 실제 계약시엔 영상 녹화도 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성년후견 분야 전문가가 된 계기는 ‘우연을 가장한 운명’에 가깝다. 배 변호사가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2014년은 우리나라에서 후견제도가 시행된지 1년도 안된 시점이었다. 당시 발달장애인 공공후견 시범사업을 맡아서 하던 은사 제철웅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배 변호사에게 참여를 제안해 발을 들여놓은 것이 시작이다.

배 변호사는 “1년반 정도 성년후견 관련 일을 경험하고 나서 일반 송무를 하던 차에 사단법인 온율의 성년후견 전문가 채용 공고를 보고 홀린 듯이 지원했다”며 “온율에 온 뒤로는 후견인 관련 업무를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9월 9일 국가공무원법 위헌제청사건의 공개변론을 마치고 배광열(왼쪽 네번째) 변호사를 비롯한 대리인들과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배 변호사 제공.
그는 이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제도 개선에도 힘을 많이 쏟아왔다”며 “재작년말에 사단법인 두루와 함께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언급했다.

지난 2022년 12월22일 헌재는 서울행정법원이 제청한 국가공무원법 제69조 제1호 위헌제청사건의 선고기일을 열고 재판관 6대3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선고했다. 국가공무원이 피성년후견인이 된 경우 당연퇴직(자동퇴직)하도록 규정한 국가공무원법 제69조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이었다.

배 변호사는 “후견이라는 제도는 후견인의 도움을 받아 지역사회에서 똑같이 살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인데 후견을 개시했다고 해서 직장을 잃게 만드는 것은 애초에 모순되는 것”이라며 “국제사회에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규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배 변호사가 2016년 10월 합류한 온율은 법무법인 율촌이 2014년 3월 설립한 공익 사단법인이다. ‘따뜻한 법으로 만들어가는 함께 하는 세상’이라는 비전 하에 정신적 장애인의 사회통합, 혁신적인 비영리 생태계 조성,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 교육을 통한 사회적가치 전파, 로펌의 사회적책임 이행 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율촌 설립 파트너인 윤세리 명예대표변호사가 온율의 이사장을 맡아왔으며 최근 이인용 전 삼성전자(005930) 사장이 이사장으로 영입돼 힘을 보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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