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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뻐꾸기가 울때까지 기다린 스가…日 1인자가 되다

김보겸 기자I 2020.09.15 00:00:00

"총리 생각 없다"던 농부의 아들, 일본 99대 총리로
기다림을 무기로 패권 쥔 도쿠가와 이에야스 연상케해
혈연·지연 없이 밑바닥부터 20년간 아베 곁 지켜
"아베 내각보다 더 폐쇄적일수도" 일본 내 경고도

14일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70% 넘는 득표로 압승했다(사진=AFP)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집권 자민당 1인자 자리에 올랐다. 항상 아베 신조 총리의 뒤에 서 있던 그가 이제는 아베 총리 앞자리에 서게 됐다. 아베 총리의 건강 악화설이 제기된 뒤 후계자로 주목받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후에도 “총리 자리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자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든 것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 것이 스가 관방장관의 스타일이다. 그는 자민당 7개 파벌 중 5개 파벌의 지지를 확보해 사실상 당선을 확정하고 나서야 “생각 없다”며 선을 그어 온 자민당 총재 자리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의 신중함은 지난해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은 아베 신조 총리가 일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며 롤모델로 일본 전국시대 맹주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동생을 언급한 데서도 드러난다. 그랬던 그가 1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70% 넘게 득표해 압승을 거두자, 오히려 도요토미의 아들을 치고 천하 통일의 과업을 이룬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울지 않는 뻐꾸기는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답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진=AFP)
◇“뻐꾸기가 울때까지 기다린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닮은 꼴


일본에서 울지 않는 뻐꾸기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셋이다. ‘울지 않는 뻐꾸기는 필요 없으니 목을 친다’는 전국시대의 쇼군 오다 노부나가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울게 만들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전국시대 패권을 다퉜던 이들 중 최후의 승자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다. 전국통일의 토대를 닦은 오다 노부나가는 배신의 칼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켰다가 와병으로 세상을 떴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가 지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의 충복으로 남았다. 스가 관방장관 역시도 지난 2007년 아베 총리가 궤양성 대장염으로 집권 1년 만에 사퇴한 이후에도 그의 곁을 지켰다. 인내의 결실은 달았다. 2012년 2차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아베 총리는 스가 장관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두번째 아베 내각은 스가 관방장관의 입김이 인사를 좌지우지해 ‘스가 내각’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가 자민당 신임 총재로 선출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사진=AFP)
농부의 아들이 일본 1인자에 오르기까지

스가 관방장관이 전면에 내세운 건 평범함이다. 지난 8일 그는 자민당 총재 선거 소견 발표 연설회에서 “50년 전 상경했을 때 오늘 나의 모습은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다”며 “나 같은 보통의 사람도 노력하면 총리대신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 일본의 민주주의가 아닐까”라며 세습 정치인들이 넘쳐나는 일본 정계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 엘리트 정치인중 지연과 혈연없이 정계에 데뷔하는 인물을 찾아보기어렵다. 전임 아베 총리는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 전 자민당 간사장으로부터 지역구를 물려받았다. 최장수 총리 3위에 오른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는 아베 총리의 외종조부다.

정치인 집안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아베 총리와 농부의 아들인 스가 관방장관은 걸어온 길부터 다르다. 1948년 아키타현 딸기 농가에서 태어난 스가 관방장관은 고등학교 졸업 후 농업대학에 가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뿌리치고 무작정 도쿄로 상경했다. 이후 골판지 공장에 취직해 2년간 모은 돈으로 호세이대 법학부 야간대학에 입학했다. 학비가 가장 싸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경비원과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하며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했다. 기업에 취직한 이후에도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며 정치인이 되고자 대학 동문을 무작정 찾아간 그는 국회의원 비서관부터 시작해 요코하마 시의원을 거쳐 1996년 자민당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스가 관방장관이 정치적 동반자인 아베 총리를 만난 것은 2002년이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계기로 대북 강경책을 주장한 아베 총리의 눈에 띈 것이다. 결국 스가 관방장관은 의원이 된 지 10년 만인 2006년, 아베 총리의 당선과 함께 총무대신으로 발탁됐다. 이후 2012년부터는 2인자인 관방장관으로 7년 8개월 동안 재임했으며, 현재는 제99대 일본 총리 선출을 목전에 두고 있다.

“아베 내각보다 폐쇄적일 수도” 경고

그러나 스가 관방장관이 총리에 오르면 지금보다 더 폐쇄적인 정부가 들어설 수 있다는 우려가 일본 내에서 나오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아베 총리의 집권 기간 중 벌어진 3대 정치 스캔들에 대한 답변이다. 총재 후보 토론회에서 스가 관방장관은 재조사가 필요 없다는 취지로 스캔들과 관련한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이를 두고 모치즈키 소자 도쿄신문 기자는 아사히신문이 운영하는 온라인미디어 아에라닷(Aera dot)에 “스가 장관이 총리가 되면 정보 공개 측면에서 아베 정권보다 후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나빠질 대로 나빠진 한일관계를 개선할 가능성도 낮다는 전망이다. 사실상 아베 내각의 외교정책까지 계승할 의지를 선언한 그가 한일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다. 스가 장관은 ‘자신의 외교 자세’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폭넓고 안정적인 관계를 각국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차기 총재로 선출된 스가 관방장관의 임기는 아베 총리의 남은 기간인 내년 9월까지다. 15일에는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하고 16일 스가 내각이 출범한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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