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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쯤 북한은 선전포고도 하지 않고 기습 남침을 했고, 개전 사흘만인 28일 수도 서울이 함락됐다. 미국은 27일 대북한 선전포고를 했고 7월 1일부터 미 지상군을 참전시켰다.
또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이 전투부대를 파병했으며 5개국이 의료지원에 나서고 39개국이 물자를 지원하는 등 총 60개국이 연합군 참전을 결의했다. 그러나 5일 죽미령 전투, 20일 대전전투에서 연거푸 미군이 패하면서 결국 7월 말쯤 낙동강 전선이 구축된다.
9월 15일 유엔 연합군은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다. 28일 서울을 탈환했고 10월 1일 38도선을 넘어서 북진을 시작했다. 19일에는 평양에 입성했고 10월 26일에는 압록강에 인접한 초산군, 11월 23일 함경남도 혜산시를 점령했다.
11월 24일 유엔 연합군은 크리스마스 대공세를 감행했으나 대패한다. 12월 4일 연합군은 평양을 내줬고 12월 25~26일 흥남철수 작전을 실시한다. 지속적으로 밀린 국군과 유엔 연합군은 1951년 1월 4일 서울을 뺏겼다가 3월 15일 재탈환에 성공한다.
1951년 7월부터 양 진영은 휴전 협상을 시작했다. 휴전 협정 전 영토를 넓히기 위한 전투는 계속됐다. 대표적으로 1951년 8~9월 치른 피의 능선 전투, 1952년 10월 백마고지 전투, 휴전 직전 발생한 금성전투가 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체결됐다. 이후 대한민국은 1953년 10월 1일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으며 동맹을 공고히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