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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헌법재판소가 11일 낙태(임신중절)행위에 대한 형사처벌이 헌법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답을 다시 내놓는다. 지난 2012년 합헌 결정 이후 약 7년 만의 판단이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낙태죄 처벌조항인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을 선고한다.
‘자기낙태죄’로 불리는 형법 269조는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를 한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같은 법 270조는 낙태를 도운 의사에게 2년 이하의 징역으로 처벌하는 ‘동의낙태죄’ 조항이다.
앞서 헌재는 2012년 8월 헌법재판관 4대 4 의견으로 낙태죄 처벌은 합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당시 헌재는 “태아는 어머니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생명권이 인정된다”며 “임신 초기나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 않은 게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헌재 판단은 수십차례 임신중절수술을 한 혐의(업무상 승낙 낙태 등)로 기소된 한 산부인과 의사가 1심 재판 중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심사해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이 산부인과 의사는 법원이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자 2017년 2월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이후 약 2년간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우선한다고 볼 수 있는지’를 두고 심리를 해왔다.
지난해 5월 헌재 공개변론에서 헌법소원 청구인 측은 “태아의 생명권은 이미 태어난 사람과 똑같이 인정할 수는 없다”며 “태아 생명권은 사람의 생명권과 달리 제한될 수 있고 따라서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이 더 존중돼야 하므로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무부 측은 “전세계적으로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우리 법체계가 특별하지 않다”며 “생명의 특징인 연속성을 고려하면 어느 한 시점을 택해서 (태아라는 이유로) 보호법익을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헌재의 선택지는 합헌과 단순 위헌, 헌법불합치, 한정 위헌 등 4가지가 꼽힌다.
만일 재판관 6명 이상이 ‘위헌’ 의견을 낸다면 형법상 낙태죄 규정은 선고 즉시 효력을 상실한다. 처벌 규정이 사라지는 만큼 사실상 임신중절이 전면 허용된다. 또 형법 규정에 대한 위헌 결정은 소급효과가 있기 때문에 2012년 합헌 결정 이후 처벌받았던 이들은 다시 무죄를 선고받을 수도 있다.
헌재가 당장 위헌 결정을 내려 처벌 공백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헌법불합치’ 주문을 선택할 수도 있다. 헌법불합치는 해당 법률이 헌법에 어긋나지만 법률 공백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현행 규정을 잠정적으로 유지하고 국회에 시한을 정해 위헌소지가 없는 새 입법을 촉구하는 주문을 말한다.
재판관 6명 이상이 위헌 의견을 내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해당 조항은 합헌 결정된다. 다만 현행 규정을 둔 채 낙태죄로 처벌하는 범위를 한정하고 그 이상으로 확대해석하는 경우 위헌이라고 결정하는 ‘한정위헌’도 헌재가 고려할 수 있는 주문이다. 예를 들어 ‘임신 초기인 12주까지의 태아까지 낙태죄 처벌 범위에 넣는 것은 위헌’이라는 식이다.
법조계에서는 최근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낙태죄 폐지 여론이 크게 높아졌고 진보 성향의 재판관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만큼 헌재가 전향적인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남석 헌재소장과 이은애·이영진 재판관 등 3명은 인사청문회에서 현행 낙태죄에 대한 위헌 취지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진보적 색채가 강한 이석태·김기영 재판관도 낙태죄 처벌에 부정적 의견을 내놓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여성가족부도 지난해 5월 공개변론에서 정부 부처로는 처음으로 낙태죄 폐지 입장의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