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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과 러시아 식민지였던 핀란드. 1917년에야 비로소 ‘핀란드’라는 국명을 걸고 독립한 100년 역사의 신생국가다. 그러나 유럽내에서도 ‘복지천국’, ‘육아천국’, ‘교육의 나라’란 칭송을 받는 대표적 복지국가다.
◇ 핀란드에서 유모차 동행시 대중교통 무료
핀란드 헬싱키에 발을 내딛자 한국땅에선 볼 수 없는 모습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모든 핀란드 대중교통들은 차량안 중앙 출입문 바로 옆에 유모차 전용 주차구역이 마련돼 있다. 출입문엔 계단 대신 완만한 경사로가 있고, 버스와 트램 모두 인도 가까이에 바짝 붙어 정차한다. 유모차나 휠체어가 손쉽게 탑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유모차를 동반한 승객들은 자국 국민 뿐 아니라 관광객도 모든 대중교통 이용이 무료일 뿐 아니라 가장 먼저 탑승하는 배려를 받는다
유모차를 끌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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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에게 육아법 가르치는 핀란드 정부
안티 리포(Antti Lippo)씨. 헬싱키에서 1세 딸 쉴라(Sheela)를 키우는 워킹대디다. 도시환경 컨설턴트로 일하는 안티씨는 결혼 3년만에 아이 아빠가 됐다. 벤처회사에서 일하는 아내를 대신해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를 돌본 지 4개월째다.
안티씨는 “아내는 벤처회사에서 일해 상대적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하기 쉽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하기 위해선 내가 육아휴직을 내는게 옳은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아내는 자신의 일을 너무 사랑한다”며 웃었다. 안티씨의 아내는 전체 근무시간의 80%만 일하는 주4일 시간 선택제 근무로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렸다.
이제는 익숙한 육아아빠지만 안티씨도 처음 쉴라를 돌볼 때는 좌충우돌이었다. 안티씨는 육아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이웃과의 공동육아 △정부와 지자체가 제공하는 아동·부모 교육 복지 시스템 △육아친화적인 시설과 사회분위기를 꼽았다.
안티씨는 “아이를 부모가 오롯이 완벽하게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아이를 돌보는 게 즐겁고 행복해진다. 아이는 부모 뿐 아니라 이웃과 나라가 도와야 바르게 자라날 수 있다”고 말했다.
안티씨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과 배려 못지 않게 부모들을 위한 교육과 만남의 장소가 많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모들도 처음 엄마, 아빠가 됐을 때 미숙할 수 밖에 없다. 임신부터 육아까지 단계별로 노하우와 지침을 제공하는 부모 교육기관이 정말 중요하다. 핀란드는 신혼부부가 가족계획을 세우는 순간부터 남녀 구분없이 출산·육아와 관련한 상담 및 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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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경제적 부담이 크지 않다는 점 역시 핀란드 복지의 장점이다. 핀란드 부모들은 아이가 태어난 뒤 18세가 될 때까지 매달 100유로(원화 기준 12만 8000원)를 받는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면 정부가 매달 600유로(76만 7800원)을 지원한다.
유일한 보육비용은 월 300유로(38만 4000원)인 어린이집 보육료다. 저소득층 가정은 이 돈도 정부가 대신 낸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는 모두 무상교육이다. 부자든, 가난하든 무상교육에는 예외가 없다. 안티씨는 “부자는 세금을 더 낼 뿐”이라고 말했다.
핀란드 육아지원 제도에도 그늘이 존재한다. 핀란드 정부는 여성의 독박육아를 깨기 위해 수십년간 사회와 가정에 양성평등을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경우는 10명 중 3명 뿐이다. 물론 남성 육아휴직자 비율이 8.5%(2016년 기준)에 머물러 있는 우리나라에 비할 바는 아니다. 다만 남성육아 휴직자가 30% 선에서 정체되고 있는 이유는 우리와 비슷하다.
안티씨는 “수십년간 이어진 양성평등을 위한 제도적 노력 덕에 남성이 아이의 출산 직후 부성휴가와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하면 소득이 감소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낮은 여성이 육아휴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떨어지는 소도시나 지방에서는 직장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가 지역사회의 고민거리라고 한다.
물론 경력단절여성이 181만 2000여명(2017년 4월 기준)에 달하는 우리나라 워킹맘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뿐이다.
가정양육수당제도를 악용하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는 점도 핀란드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다. 일부 빈민·이민자 가정에서는 생활비로 쓰기 위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대신 가정양육수당 지원을 선택한다. 2015년 핀란드 사회보건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7세 미만 자녀를 둔 핀란드 여성 10명 중 4명은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대신 가정양육수당을 받는다.
하지만 핀란드 국민들은 긍정적이다. 많은 난제와 어려움을 이겨내고 현재의 복지국가를 일군 역사에 대한 대한 자부심이 미래에 대한 낙관으로 이어진다.
“저희 아버지만해도 바깥 일에 매달리느라 그다지 가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핀란드를 만드는 데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또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쉴라와 우리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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