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격자가 개설한 병원과 약국으로 새나가는 건강보험 재정이 연평균 3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입법조사처 보고서 ‘국정감사 이슈 분석’에 따르면 건강보험공단이 의료법과 약사법상 불법인 사무장병원과 면허대여(면대)약국에 지급했다가 환수를 결정한 진료비와 약제비가 2014년 초부터 올해 5월 말까지 10년 5개월간 2조 9861억여원에 이르렀다. 불법 병원·약국은 영리 위주로 운영돼 과잉 진료와 의약품 판매로 건보 재정을 축낼 뿐 아니라 환자 건강도 해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게다가 환수가 결정된 진료비와 약제비 가운데 실제로 환수되는 비율도 매우 낮다. 연도별 환수 결정액 대비 실행액 비율을 보면 코로나19 위기의 영향으로 결정액이 급감한 2021년(41.9%)과 2022년(11.2%)을 제외하면 매년 10% 미만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이는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이 불법 영업으로 적발되면 재빨리 문을 닫고 재산을 은닉해 압류를 피하는 반면 경찰 수사와 환수를 위한 법적 절차 이행에는 평균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환수가 결정된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은 거의 전부 폐업했고, 그 가운데 80% 이상은 당국의 조사 이후 환수 결정 이전에 문을 닫았다.
현장의 불법은 날고 단속은 기는 형국이다. 사무장병원과 면대약국은 영업 성격상 다중을 상대로 하기에 공개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어 당국의 감시망에 걸려들기 쉬워 보인다. 하지만 단속이 허술하다 보니 여기저기에 끊임없이 생겨나고, 걸리기 전에 최대한 돈을 벌다가 걸리면 문을 닫고 오리발을 내밀면 된다는 식의 영업 행태가 만연한 것이다.
의료와 의약품 판매 현장의 불법·무질서를 이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보건 분야 특별사법경찰(특사경) 보강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보건복지부에 특사경 3명 정도가 배치돼 있지만 이 인력만으로는 행정 업무 처리에도 충분치 않다. 건보공단에 사법경찰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지난 21대 국회에 발의됐어도 의료·약업계의 반발에 부닥쳐 표류하다 폐기됐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번 22대 국회에 발의된 유사 법안들의 신속한 처리와 함께 보건 분야 특사경 보강을 서두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