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상황에 대한 정부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시각과 진단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KDI는 그제 발간한 ‘경제동향 9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높은 수출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고금리 기조로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KDI는 지난해 12월부터 이달까지 10개월째 내수 부진 진단을 내놓고 있다.
KDI는 ‘내수 회복 지연’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내수 불황’으로 봐야 한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7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전산업 생산이 전월 대비 0.4% 감소하며 5월(-0.8%)과 6월(-0.1%)에 이어 석 달째 감소세를 보였다. 특히 주력 산업 분야로 경기 파급 영향이 큰 반도체(-8%)와 자동차(-14%) 생산이 큰 폭으로 줄어 경기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내수와 밀접한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 생산도 감소세를 지속했다. 소비 지표인 소매판매(-1.9%)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지난 2분기(4~6월) 마이너스 성장(-0.2%)에 이어 3분기(7~9월)에도 내수 불황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내수 불황에 대한 경고음을 내는 곳은 KDI뿐만이 아니다. 산업연구원(KIET)의 ‘8월 제조업 PSI’(전문가 서베이 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출은 111로 기준치(100)를 넘겼지만 내수는 97로 기준치를 밑돌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8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수출 호조, 내수 부진’의 경기 양극화를 한국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지목했다. 수출이 지난해 10월 플러스로 돌아선 이후 지난달까지 11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내수 부진이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경제사령탑인 기획재정부는 상반된 진단을 내놓고 있다. 기재부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8월호’에서 우리 경제가 “완만한 내수 회복 조짐을 보이며 경기 회복 흐름이 지속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기재부는 지난 5월부터 넉 달째 ‘내수 회복 조짐’이라는 시각을 유지 중이다. 그러나 내수가 살아나는 조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내수 부문에 대한 정확한 경기 진단을 토대로 불황 극복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