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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은 대통령의 부인 자격으로 다양한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빈번하다. 다만 공식 행사 외에 활동 여부는 영부인의 판단영역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의 경우 재임 기간 내내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그림자 내조’였다. 손 여사는 구설에 오르는 걸 미연에 방지했다. 대신 손 여사는 매일 아침 신문을 읽으며 언론에 비친 남편의 활동을 꼼꼼히 살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는 적극적으로 대외 활동에 나선 인물이다. 육 여사는 ‘양지회’를 만들어 봉사활동과 지적장애 아동을 위한 사업을 벌였다. 육 여사의 활동반경이 넓어지자 이를 공식적으로 보좌하고 지원하기 위해 청와대 제2부속실이 만들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전 여사는 재임 기간 중 영부인 최초로 단독 해외 순방을 다녀왔다. 2002년에는 유엔 아동 특별총회에서는 김 전 대통령을 대신해 임시회의 주재, 기조연설 등을 했다. 이 전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동지’이자 여성운동가였던 활동이 영부인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 케이스다.
영부인의 활동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활동적으로 변모하는 추세다. 호칭도 변하고 있다. 영부인이란 호칭 대신 ‘여사’라는 호칭이 널리 쓰인다. 지난 2017년 문재인정부 청와대는 ‘영부인’ 대신 ‘여사’란 호칭을 사용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 기간 영부인을 보좌하는 조직인 제2부속실 폐지를 공약하기도 했다. 권위적인 모습에서 국민에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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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는 역대 영부인의 행보와 달랐다. 대선 기간 개인적인 논란에 휩싸이면서 노출을 자제했다. 윤 대통령 옆에선 김 여사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김 여사가 공식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달 10일 취임식 때다. 김 여사는 당시만 해도 윤 대통령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그림자 내조’에 집중했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때는 만찬 전 잠시 만나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다.
조용한 내조에 집중했던 김 여사는 지난 13일 경남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독대했다. 김 여사의 봉하행은 윤 대통령 없이 홀로 공식 일정을 소화한 첫 사례다. 이후 4일에는 여당인 국민의힘 4선 이상 의원들의 부인 11명과 용산 청사 인근에 있는 국방컨벤션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16일에는 서울 연희동에 있는 고 전두환 전 대통령 자택을 찾아 부인 이순자씨를 예방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에도 동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의 최근 행보는 대선 기간 밝힌 ‘조용한 내조에만 집중하겠다’는 약속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특히 김 여사의 의도와 달리 첫 단독 행보에서 지인 동행과 코바니콘텐츠 출신 직원 근무 동행 논란이 일면서 김 여사의 행보에 담긴 메시지 보다는 잇따른 잡음이 계속 도마에 올랐다. 6·1 지방선거 압승으로 탄력이 붙던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도 다소 주춤하고 있다.
이런 탓에 여권을 중심으로 제2부속실 부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상임고문단은 지난 21일 윤 대통령과 오찬에서 김 여사의 의전과 일정을 담당할 대통령실 공식 직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도 영부인을 조력할 조직이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다만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차이점을 보였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국가 이익의 관점에 대통령 부인으로서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은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김 여사가 아무 해명 없이 내조를 하고 있다. 영부인으로서 그러면 안된다”면서 “국민들은 대통령 부인으로서 김 여사를 바라 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2부속실이든 대통령실 내 조직실이든 김 여사를 지원하는 조직을 빨리 재정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순 지원조직을 넘어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관리 조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영부인은) 대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김 여사 활동을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관리하는 부서가 필요하다. 메시지 전문가들을 통해서 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