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37) 작가는 자신의 첫 장편소설 ‘밝은 밤’(문학동네)을 마무리 지은 소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최 작가는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으로 문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동시에 받았다. ‘밝은 밤’은 작가가 지난해 봄부터 겨울까지 1년 동안 4차례에 걸쳐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작품을 다듬은 장편소설이다. 책은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주인공 지연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떠난 지방 작은 도시 ‘희령’에서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할머니와 재회하며 들은 이야기를 담았다. 할머니의 입을 통해 들은 증조모부터 지연의 이야기까지 100년에 걸친 여성 4대의 삶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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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기 작가의 마음속에 가장 먼저 나타난 인물은 소설 속 등장하는 증조모 ‘삼천이’였다. 삼천이는 일제 강점기 백정의 딸로 태어나 핍박을 받다가, 어린 미혼 여성을 끌고 가는 일본군을 피해 우연히 만난 증조부와 개성으로 넘어가 결혼을 한 인물이다. 그는 “삼천이는 누구에게도 제대로 된 사랑을 못 받아보고 자라 사람을 무서워하는 인물”이라며 “타인에게 기대조차 없는 삼천이가 인간관계를 맺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가 강하게 와 닿았고 덕분에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처음부터 여성 4대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건 아니다. 글을 쓰다보니 삼천이를 중심으로 하나, 둘씩 인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는 “인물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말하며 나와 소통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 힘든 시간을 겪은 인물들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는 “시대는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사회는 거칠다”며 “뭔가 남들보다 대단한 걸 이루지 않더라도 여기 태어나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작가는 독자들이 자신의 책을 읽고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평가에 맞춰 자신을 갈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찌질하고 약해 보이는 모습도 이해하고 다독여 줬으면 한다”고 했다.
책은 출간과 함께 주요 서점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며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책에 독자들이 많이 공감하는 이유로 솔직함을 꼽았다. 사회를 살아가면서 누구든 상처받고 아픈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상처가 약점이 될까봐 쉽게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현대인들이 점점 더 외롭고 고립되는 이유다. 그는 “책을 쓰면서 가장 부끄럽고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솔직하게 쓰려고 한다”며 “그런 부분을 독자들이 서로 공감해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처음에는 글을 쓰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거나, 못된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진 않을까 두려움도 있었다. 특히 ‘쇼코의 미소’에서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등의 감정, 혹은 남을 질투하는 감정 등을 보면 사람들이 자신을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걱정마저 들었다. 작가는 “오히려 책을 내고 반응을 보니 다들 마음속에 비슷한 감정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생각보다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보며 스스로도 위안을 얻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아직 더 솔직하지 못한 게 작가로서 가장 답답한 부분”이라며 “입 밖으로 내는 것 자체가 어려워 아직도 못 쓴 주제들이 있는데 앞으로는 그런 이야기들을 더 꺼내고 싶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