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 전문가인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18일 세종시 집무실에서 진행한 이데일리 인터뷰에서 한미정상회담 반도체 의제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19일 출국한 문 대통령은 22일 새벽(한국 시간 기준)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에 반도체 칩, 전기차용 대용량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대 핵심 품목의 공급망을 점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김 원장은 바이든 행정부의 관심이 반도체 등의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에 쏠려있는 만큼 이번 회담에서 이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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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은 “신뢰를 형성하려면 일본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8년 11월 당시 우리나라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된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해당 일본 기업들이 1억원씩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이듬해 일본 정부는 반도체 첨단 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등 경제보복에 나섰다.
김 원장은 “일본 스스로 자기 발등을 찍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원장은 “당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로 ‘일본으로부터 안정적으로 반도체 소재를 공급받지 못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경각심이 생겼다”며 “반도체 분야에서 국제사회 신뢰를 잃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미국 연방·지방정부가 혼연일체 돼 외국기업을 미국으로 불러들이고 있어 반도체 분야는 우리나라의 호재”라며 “미국에 투자를 확대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투자가 줄어들지는 않고, 전체 반도체 투자 규모가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다만 그는 “미국이 반도체 분야에 주도권을 쥐려는 것에는 우리나라가 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60년대처럼 연구 개발에 집중해 제조업 기반을 늘려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김 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 예정인 배터리 등 신산업 분야, 코로나19 백신 분야 협력을 긍정적으로 전망했다. 김 원장은 “배터리, 바이오 분야를 낙관적으로 본다”며 “미국, 유럽의 배터리 수요가 엄청 폭발할 것이고 우리나라의 바이오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통령이 코로나19 상황에서 미국까지 갔는데, 백신 관련 ‘깜짝 뉴스’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미중 갈등이 과장돼 있다”며 과도한 공포에 선을 그었다. 그는 “양국이 신냉전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은 2035년까지 경제적 파워를 늘리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안정과 평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대중국 견제 성격의 협의체인 ‘쿼드(Quad) 관련해 “사드는 미사일 등이 구체적으로 보이는 실물이지만 쿼드는 그렇지 않다”며 “우리나라가 쿼드에 참여한다고 해서 중국이 사드보복 때처럼 나서지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탄소국경세 대비해야…한전 역할 굉장히 중요”
다만 김 원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기후변화 관련 압박을 할 것”이라며 기후변화대응을 한미정상회담 리스크로 꼽았다. 5월에는 △P4G(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정상회의, 6월에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세 법안 제출 일정이 잇따라 예정돼 있다. 신설되는 탄소국경세는 탄소배출 규제가 강한 국가가 약한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품목에 부과하는 관세다.
김 원장은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면 우리나라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석탄화력으로 생산한 전기로 만든 수출 상품에 탄소국경세가 더 붙게 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올해부터 당장 대비해야 한다. 한전(015760)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전력을 어떻게 생산할지, 신재생을 얼마나 더 늘릴지, 전기요금 체계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개편할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원장과의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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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 반도체 공급망, 기후변화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 이같은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하고 조율하는 이번 회담은 굉장히 중요하다.
-‘백신 스와프’ 같은 성과가 나올까?
△백신 관련 호재를 기대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미국까지 갔는데, 백신 관련 ‘깜짝 뉴스’를 기대한다. 특별한 성과가 없어도 실망할 건 아니다. 백신 수급이 스케줄에 따라 차질 없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백신 수급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전망하는 건 우리나라와 미국 제약사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다. 사실 백신 제약사가 갑처럼 비춰지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자사 접종횟수를 늘리려고 제약사 간 경쟁이 치열하다. 우리나라는 협상력을 갖춘 계약자다. 인구가 5000만명 넘고 하루 150만명 이상 접종이 가능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서다.
-반도체 관련 투자 논의 전망은?
△우리나라 기업들이 미국에 엄청난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것은 미국에 주는 선물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호재다. 미국 연방·지방정부가 혼연일체 돼 외국기업을 미국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미국에서의 투자 환경이 좋은 것이다. 미국에 투자를 확대한다고 해서 우리나라 투자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전체 반도체 투자 규모가 늘어날 것이다. 다만 미국이 반도체 분야에 주도권을 쥐려는 것에는 우리나라가 긴장해야 한다.
-한미 간 반도체 협력에서 중요 포인트는?
△미국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 확보다. 이 부분에서 미국의 신뢰를 얻는 게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미국에 투자하겠다는 뜻, 미국에 안정적으로 반도체를 공급하겠다는 뜻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일본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일본은 2019년 ‘소재·부품·장비 사태(일본 정부가 일제 강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일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첨단 소재에 대해 한국 수출을 규제한 것 )’에서 완패했다. 일본 스스로 자기 발등을 찍은 것이다 .
당시에 일본이 완패한 것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당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사태로 ‘일본으로부터 안정적으로 반도체 소재를 공급받지 못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경각심이 생겼다. 일본 정부가 어떻게 할지 모르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반도체 분야에서 국제사회의 신뢰를 잃은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
-반도체 외에 기대되는 한미 경제협력 분야는?
△배터리, 바이오 분야를 낙관적으로 본다. 향후에 미국, 유럽의 배터리 수요가 엄청 폭발할 것이다. 중국의 배터리 기업들이 엄청나게 약진하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은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이 배터리 분야에서 역할을 하겠다고 하면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커질 것이다. 바이오 분야의 경우 우리나라가 미국, 유럽보다 기술력은 뒤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바이오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이 추세로 가면 반도체, 배터리 못지 않은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미중 갈등은 어떻게 전망하나?
△미중 갈등이 과장돼 있다는 것부터 말하고 싶다. 양국이 신냉전까지 가지 않을 것이다. 신냉전으로 가는 것은 양국 스스로 자신의 손발을 묶는 것이다. 왜냐하면 중국이 2035년까지 경제적 파워를 늘리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안정과 평화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동맹국과 함께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많기 때문에 미국도 신냉전까지 갈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가 대중국 견제 성격의 협의체인 ‘쿼드(Quad)’에 참여해야 할까?
△우리나라가 먼저 나서서 참여하겠다고 할 필요는 없다. 지금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쿼드에 참여해달라고 한 적 없다. 미국이 참여해달라고 요청하면 그때 검토하면 된다. 그리고 쿼드에 참여한다고 해서 중국이 사드보복 때처럼 나서지도 않을 것이다. 사드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실물이지만, 쿼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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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기후변화 관련 압박을 할 것으로 본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중요한 것은 미국의 기후변화 관련 타임 스케줄이다. 기후변화에 얼마나 빨리 대응하려고 하는지, 미국이 EU 대응에 어떻게 대응할지, 어떻게 한미가 공동보조를 맞출지를 논의해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은 산업계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우리나라는 굉장히 빨리 적극적 대응을 해야 한다.
-국제사회 논의 상황은?
△올해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미 해외 압박이 시작됐다. 지난달 22일 기후정상회의가 열렸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신규 해외 석탄발전소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 회의는 미국이 기후변화 문제에서 리더십을 잡기 위해 돌아왔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5월에는 P4G(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정상회의가 열린다. 6월에는 G7 정상회의가 있다. EU는 탄소국경세(탄소배출 규제가 강한 국가가 약한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품목에 부과하는 관세)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올해 6월까지 관련 법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유럽은 2023년부터, 유럽은 2025년까지 탄소국경세를 도입할 예정이다.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당장 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에 어떤 영향?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면 우리나라 수출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가 친환경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관세를 더 부과받는다. 신재생인지 석탄화력인지 어떤 발전으로 전기를 만들었는지도 중요하다. 석탄화력으로 생산한 전기로 만든 수출 상품에 탄소국경세가 더 붙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관세가 붙으면 우리나라 수출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전기와 철강 분야가 빨리 친환경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전(015760)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한전에서 만든 전기가 우리나라 모든 제조업 분야로 퍼지기 때문이다. 정승일 한전 신임 사장의 할 일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전력을 어떻게 생산할지, 신재생을 얼마나 더 늘릴지, 전기요금 체계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개편할지 등을 고민해야 한다.
-원전 건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원전을 지금부터 셧다운(폐쇄)할 수는 없다. 노후된 원전, 비용이 많이 드는 원전부터 차츰 줄여나가야 한다. 원전과 천연가스(LNG)로 간 뒤 신재생으로 단계적으로 가야 한다.
-북핵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바이든 정부는 싱가포르 합의를 계승한다고 했다. 이 합의는 2018년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간 △북미 간 새로운 관계 수립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한반도의 지속적·안정적 평화체제 구축을 합의한 것이다. 이 합의는 문재인·트럼프 정부에서 이뤄낸 성과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싱가포르 합의를 기반으로 무엇을 더 진전시킬 수 있을지를 설계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싱가포르 합의, 하노이 회담에서 이루지 못했던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미국의 제재완화 관련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북한에 어떤 조치를 취해주고 한국이 이를 이끌어내기 위해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인식이 많은데 이는 잘못됐다. 북한은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통해 이같은 위협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미국도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