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 속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그 대답이 하라리가 ‘인류 3부작’의 선행 연구에 있다. 옥스퍼드대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저서에서 하라리는 개인의 정체성 문제를 파고들기 위해 르네상스 시대 군인들이 남긴 회고록에 주목한다. 중앙집권적 근대국가가 등장하기 전, 역사와 개인사 사이의 긴장 관계가 첨예하게 드러나는 시대라는 이유에서다.
이들의 회고록은 지금의 관점에 보면 구색을 갖춘 글이라 하기 어렵다. 인과관계로 이어진 이야기보다 서로 다른 에피소드의 건조한 나열인 경우가 많다. 기존 이론 또한 ‘진실한 목격담’과 ‘개인주의’라는 두 가지 가설을 바탕으로 회고록을 연구해왔다. 그러나 하라리는 르네상스 시대에는 진실성이 귀족의 명예에 기인했다는 점과 이 시기에는 근대적 개인이 출현하지 않았음을 바탕으로 이들 가설 모두를 반박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제시한다.
하라리가 보기에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는 명예의 전당이었다. 역사는 기억할 만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지 지식을 전달하거나 교훈을 주는 수단이 아니었다. 명예로운 일화 중심으로 이들의 회고록이 남겨진 이유다. 하라리는 이 시대 군인들의 회고록이 역사와 개인사가 일치하는 ‘나’의 역사라고 본다. 당대 회고록 저자가 귀족 남성으로 한정됐고 역사의 내용은 명예로운 행동으로 국한됐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럼에도 역사와 개인사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잣대로는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하라리는 맺음말을 통해 현재 역사가 결말을 열어둔 일화 모음으로 회귀하고 있다고 전망한다. 르네상스 군인들의 회고록이 개인사와 역사를 동일시했던 것을 넘어서서 이제는 개인사가 역사보다 우위를 점하려 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나’의 의미가 확장하고 있다는 하라리의 문제 인식이 논문 발표 이후 7년 뒤 써낸 ‘사피엔스’로 이어지는 것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