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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임진왜란하면 이순신 장군이 떠오른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임진왜란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을까. 답은 ‘징비록’에서 찾을 수 있다. 서애 류성룡(1542~1607)이 쓴 ‘징비록’은 ‘미리 징계해 후환을 경계한다’는 취지로 임진왜란의 원인·전황 등에 관해 기술한 책이다. 일본이 전쟁 가능 국가로 변모하면서 동북아 안보지형이 지각변동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에도 의미가 가볍지 않다. ‘징비록’은 역사사실에 부합한 것은 물론 탁월한 설득력을 가졌다. 아울러 류성룡의 임진왜란관인 ‘‘징비록’ 사관’은 조선을 넘어 일본과 중국에까지 전해지면서 동아시아의 베스트셀러가 됐다. ‘승자는 역사를 쓰고 패자는 문학작품을 쓴다’고 하지만 ‘징비록’을 보면 ‘승자가 쓴 역사가 아니라 기록을 남기는 자가 승자가 되는 것’이다.
◇“조선사회에서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표준틀”
‘징비록’은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전체상을 통시적으로 서술한 책이다. 국보 제132호로 지정된 류성룡 친필의 초본 ‘징비록’이 모태다. 지난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국립민속박물관 전통문화배움터.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가 ‘징비록’의 전파내용, 류성룡의 임진왜란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특강에 나섰다.
1793년 7월 정조는 이순신을 의정부 영의정으로 추증하면서 “명나라의 은총을 입어 천하의 명장이 된 사람은 바로 이 충무공”이라고 말했다. 이는 임진왜란을 겪고도 조선이 살아남은 것은 명나라 덕분이며 이순신의 활약 또한 명나라 덕분에 가능했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해 “조선은 명나라와 이순신이란 키워드로 임진왜란을 이해했는데 더 강조한 것은 명나라”라며 “하지만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독자적 관점을 제시한다”고 설명했다. ‘징비록’은 명나라 군대와 조선 민관 양측의 활약이 임진왜란 승리의 양대 요인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순신으로 상징하는 조선의 민관이라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는 명나라 군대의 활약을 중시한 주류사회의 경향과는 선을 그은 것.
김 교수는 “이순신이 임진왜란의 영웅이 된 것은 후원자였던 류성룡이 ‘징비록’에서 그의 활약을 강조한 영향이 크다”며 “‘징비록’은 이후 폭넓은 독자를 확보했으며 조선사회에서 임진왜란을 이해하는 표준적인 틀로서 기능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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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넘어 일본 거쳐 중국까지
‘징비록’은 17세기 후반 일본으로 건너갔다. 1693년 제작 쓰시마 번주도서관 소장 서적목록에 ‘징비록’이 발견되고 1695년 일본문화의 중심지였던 교토에서 일본판 ‘징비록’이 출판된다. 조선시대 일본에서 출판된 문헌은 ‘동국통감’ ‘동의보감’ ‘징비록’ 등이 있는데 특히 ‘징비록’은 근세 일본사회 전반에서 읽혔다. 이는 전근대 일본이 경험한 가장 큰 국제전쟁인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사회의 지대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 김 교수는 “일본인은 임진왜란이란 전쟁을 통해 663년 나당 연합군과 충돌한 삼국시대 백강 전투 이래 거의 1000년 만에 중국 군대와 맞붙은 일본군이 어떻게 싸웠는지 알고 싶어 했다”고 설명했다.
키워드는 역시 이순신이었다. 조선과 명나라의 장군이 유능할수록 그들과 싸운 일본이 더 빛나는 법. 일본의 욕구를 충족시킨 것이 바로 ‘징비록’을 통해 영웅화된 이순신이란 것이다. 김 교수는 “한일 양국의 계산은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이순신은 한일 양국이 공히 합의할 수 있는 영웅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징비록’은 일본을 거쳐 중국인의 임진왜란관도 변화시킨다. 청나라 초대 주일공사였던 하여장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건너간 청말 대학자 양수경은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옛 지배층이 헐값에 내놓은 중국 희귀서적을 수집, 그 보고서를 ‘일본방서지’라는 제목으로 간행했다. 그 책 6권에 조선의 ‘징비록’에 대한 언급이 실려 있다. 양수경은 일본학자 가와구치 조주가 간행한 ‘정한위략’에서 “류성룡을 간신이라고 비난한 명나라 문헌의 주장을 기각하고 두보와 같은 우국지사의 면모가 느껴진다”고 서술한 대목을 인용한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장군과 직접 교섭한 류성룡이 명나라 문헌에선 좋지 않은 이미지로 기술됐는데 반대로 말하면 명나라 심기를 건드릴 만큼 특별한 인물이었다는 뜻이다.
한편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국학진흥원과 공동으로 오는 30일까지 ‘징비록’ 특별전을 연다. 풍산류씨 집안의 가족이야기 ‘충효 이외 힘쓸 일은 없다’ 전과 연계한 것으로 ‘징비록’(국보 제132호), ‘난후잡록’(보물 제160호), 투구와 갑옷(보물 제460호) 등 30여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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