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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일’ 저출산 대책, 본질은 가치에 있다[이근면의 사람이야기]

최은영 기자I 2024.09.05 05:00:00

주4일제, 재택근무, 모성보호 시간 도입
인구 소멸 위기 속 저출생 극복에 수백조 투입
정작 중요한 건 삶에 관한 가치관의 변화
‘임신이 축복, 양육이 행복’인 사회 되기를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최근 전국의 지자체들 사이에서 주 4일제 실시가 유행이라고 한다. 공무원부터 이런 흐름을 보이는 것과 재택근무의 효용성과 업무 인과성을 ‘아묻따’(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고 확산하는 것을 보니 이 정책의 내일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임신했거나 어린아이가 있는 공무원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재택근무를 하게 하는 것이다. 대전의 경우 주1회 재택근무와 함께 하루 2시간 범위에서 휴식과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모성보호 시간을 부여한다.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키우는 공무원은 주1회 이상 또는 월4회 이상 자녀 돌봄 육아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서울은 8세 이하 자녀를 키우는 공무원에게 주 1회 재택근무를 의무화하고 4급 공무원 목표 달성도 평가에 어린아이를 둔 공무원의 재택·유연 근무 사용 실적을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충남도는 2세 이하 자녀를 둔 공무원 대상 주1회 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육아휴직자에게 근무평정 가점을 준다.

전 세계에서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압도적으로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지자체들의 이러한 움직임이 십분 이해된다. 나라가 소멸할지도 모르는 공포 속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다양한 형태의 저출산 대책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젊은 공무원들에게 조금이라도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지자체장들의 책임감도 칭찬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런 땜질식 처방, 산발적 정책이 유의미한 출산율 반등을 이끌 것인가 하는 물음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결혼과 임신, 출산은 눈에 보이는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주 3일, 주 2일, 나아가 일주일에 하루도 출근하지 않는다 해도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이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52.9%, 남성의 33.1%가 출산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결국 여건보다는 출산에 대한 욕구나 희망, 가족이 주는 행복 등의 가치와 회복이 문제의 본질 중 으뜸인 것이다.

2006년부터 2023년까지 17년간 물경 280조원을 저출산 대책 예산으로 집행했다. 별 관련 없는 사업들도 저출산 예산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집행하기도 하고 총괄 지휘를 맡을 컨트롤타워 없이 중구난방으로 집행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 사회는 지난 십수 년 동안 많은 돈을 써왔다. 만약 그 돈을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젊은 부모들에게 직접 지원했다면 아이를 더 많이 낳았을까? 글쎄, 남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불행의 나락으로 밀어 넣는 사회 분위기가 지속되는 한 나라에서 수백, 수천만원을 직접 쥐여준다 한들 산후조리원 이용 요금만 올라갈 것이다.

사람들이 ‘결혼은 구속, 임신은 족쇄, 양육은 고통’이라 생각하는 한 돈을 아무리 많이 주고 일하는 시간을 줄여줘도 출산율은 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결혼은 구원, 임신은 축복, 양육은 행복’이라 생각하면 비록 살림은 팍팍하고 몸은 피곤해도 아이를 낳을 것이다.

물론 현금성 지원, 보육 편의 제공도 중요하다. 지금껏 우리 사회가 그 문제에 안일했다는 점을 지금이라도 인정하고 고치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지자체의 주 4일제 도입은 앞으로 더 큰 변화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정책들보다 더 중요한 가치관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이 모든 대책들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사회 전반적으로 가정은 곧 안정과 행복의 원천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도록 정책을 세워야 한다.

1970, 80년대 나라에서 폭증하는 인구를 조절하기 위해 온갖 산아제한 정책을 펼쳤지만 백약이 무효했다. 정작 변화를 이끌어 낸 건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였다. 그 구호가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하고 사람들의 내면에 받아들여지면서 산아제한정책은 성공할 수 있었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가치’에 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족의 가치, 아이가 주는 행복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고 거기에 돈을 써야 한다. 임신과 출산, 육아가 공포와 부담이 아닌 기쁨과 성취로 받아들여지면 낳지 말라고 해도 낳을 것이다.

세계적 현상인 개인주의의 확산은 삶의 생존과 의미를 다양한 색깔로 인식한다.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다른 선택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 행복의 현세화에 대한 시각도 바뀌고 있다. 이렇게 변화한 결과의 산물로 나타난 저출산은 선진국 공통의 현상이고 심지어 중국에서도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더욱 극심하게 반응할까. 사회의 위기와 연동해 생각해 보면 미래의 불안을 부추기는 쓸데없는 잡음(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인생의 부담)과 분절적 분쟁(남 탓, 환경 탓으로 돌리는 제반 현상)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늘 가치의 충돌은 역사 속에 있어 왔고 우린 우여곡절 끝에 바른 방향으로 수정해 왔다. MZ세대의 저출산 현상은 선진국일수록 당연한 결과라고 하지만 미국도, 유럽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작년 미국과 영국은 출산율 1.62명, 1.42명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2배가 넘는 수치다. 과연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출산율 꼴찌를 할 만큼 정말 살기 힘들고 애 낳기 어려운 환경일까? 의무는 외면한 채 권리만 주장하는 개인주의를 가장한 이기주의에 마음이 씁쓸하다. 개인과 사회 선상에서 바람직한 개인주의는 어떤 것인지도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미국은 개인의 행복이 가족과 가정 속에 있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사회 분위기를 유도한다. 우리도 그 가족 중심적 문화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사회 분위기와 인식에 기인하는 것이 많고 인식의 기초는 가치에서 온다. 이제 출산 환경과 함께 가치의 문제에 사회적 일념과 열망이 모여야 할 때다. 돈 주면 애 낳을까. 행복하면 애 낳을까.

저출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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