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에 20년 넘게 몸담은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증권사 리서치센터와 애널리스트의 현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애널리스트는 한때 증권사의 꽃으로 불렸지만, 최근 들어 투자자로부터 ‘공공의 적’ 취급을 받는 실정이다.
한편에서는 주식 유튜버나 리딩방 등 불법과 합법 사이를 오가는 유사투자자문이 난립하며 시장 교란이 성행하는 것은 증권가의 핵심으로 손꼽히는 애널리스트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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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증권사 수익 구조에서 기업 영업과 투자은행(IB)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심화했다. 애널리스트는 데이터를 기반한 분석을 통해 공시정보 이상의 정보를 제공하며 기업과 투자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기업 영업·IB 분야의 수익을 의식한 애널리스트가 매도 의견을 제대로 내지 못하면서 이들의 역할은 ‘정보 제공자’ 수준에 머물게 됐다.
이를 막기 위해 각 증권사들은 ‘리서치센터에 독립성’을 부여한다고 하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부정적인 투자의견을 제시했다고 기업 정보 제공을 꺼리는 기업이 여전히 많은 것도 이유다.
여기에 테마주 성격을 띠며 주가가 급등한 종목에 대해 매도 의견을 내는 순간 투자자로부터 비난받는 것도 애널리스트의 운신 폭을 좁혔다. 상반기 주가가 폭등한 에코프로(086520)에 대해 일부 애널리스트가 ‘과도하게 비싸다’는 의견을 내자마자 과격한 투자자로부터 십자포화를 맞은 게 대표적이다. 힐난이 계속되자 대부분의 증권사에서는 에코프로에 대한 분석 리포트를 내지 않고 있다.
증권사 관계사는 “‘저점 매수’와 ‘고점 매도’가 언제냐가 개인투자자의 최대 관심인데 증권사 리포트는 ‘매수 의견’만 내다보니 정보로서 가치가 떨어진다”며 “유튜브나 리딩방은 ‘언제 사서 언제 팔아야 한다’고 비교적 명확한 의견을 제시하다 보니 개미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에 대한 불신 풍조가 퍼지면서 리서치센터의 위상도 예전같지 않다. 수십억원대 연봉을 받는 스타 애널리스트를 꿈꾸며 한때 지망 1순위였으나 최근에는 매력도가 많이 떨어졌다. 기업 분석에 품이 많이 드는데다 리포트 발간 후 후폭풍까지 감내해야 하는 만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탓이다. 증권사 내에서도 ‘고비용 저수익’ 부서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입지가 줄었다.
증권가에서는 신뢰도가 떨어진 리서치센터의 권위 회복을 위해 유료화를 통한 정보 고품질화 등이 필요하다고 제언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개인투자자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시장 정보를 습득하고 있는 만큼 이를 뛰어넘기 위한 고급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투자자의 신뢰회복을 위한 자정작용도 필요하다. 애널리스트가 조사분석 자료를 악용해 부당이득을 취하는 사례가 계속되는 한 리서치센터의 위상회복은 어렵다.
금융권 관계자는 “증권사의 신뢰회복을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증권가와 금융당국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