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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뽀드득 뽀드득…눈꽃길 따라 ‘은빛 정원’ 거닐다

강경록 기자I 2020.03.06 04:00:00

살아 숨쉬는 ‘순백’, 강원도 태백 함백산
6~7시간 걸리는 ‘만항재~두문동재’ 코스
차로 정상 근처 1시간 코스도 있어
나뭇가지마다 눈이 소복소복
탁트인 정상에서 보는 백두대간에 힐링까지

태백산 국립공원 내에 있는 함백산 산정. 함백산은 전북 무주의 덕유산(1614m), 제주의 한라산(1950m), 강원 태백의 태백산(1567m) 등 눈꽃산행으로 이름난 곳이다. 특히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길목에 많은 눈이 내려 봄눈꽃 산행을 즐길 수 있다.
함백산 정상 암릉이 얼어붙은 모습이 마치 겨울 왕국 속으로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함백산 정상에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등산객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춘사불래춘(春似不來春).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다는 말이다. 마음에도 없는 흉노족에게 시집을 간 왕소군의 심정을 옮겨놓은 한시의 한 구절이다. 올봄은 유난히 더 그런 기분이다. 전국을 강타한 바이러스가 동장군보다 더 혹독해서일 게다. 살갗이 아릴 정도의 한기보다 더 냉혹하게 우리 국민의 마음도 얼어붙게 했다. 삭막해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강원도 태백으로 향했다. 겨울에만 볼 수 있다는 꽃이 봄에 만개했다는 소식에서다. 눈보다, 얼음보다 투명한 겨울꽃, 바로 눈꽃을 보기 위해서다. 마른 가지만 앙상하던 잿빛 산을 온통 은빛으로 물들인 장관. 전국을 얼어붙게 한 바이러스도 눈꽃처럼 깨끗해기를 빌며 함백산 정상에 올랐다. 바람결에 하늘거리고, 햇살에 반짝이는 눈꽃을 좇아 꿈길 걷듯 그렇게….

강원도 태백의 함백산은 해발고도가 1500m가 넘는 고산임에도 큰 힘들이지 않고 산정에 오를 수 있다. 함백산 정상을 앞두고 펼쳐진 눈꽃이 마치 겨울왕국을 연상시킨다.


◇눈꽃산행의 가성비 갑, 함백산

눈꽃산행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산이 몇 있다. 전북 무주의 덕유산(1614m), 제주의 한라산(1950m), 강원 태백의 태백산(1567m). 태백산 국립공원 내에 있는 함백산(1572m). 그 가운데서도 함백산이 유독 끌리는 건 해뱔고도 1500m가 넘는 고산임에도 큰 힘 들이지 않고, 산정에 오를 수 있어서다. 흔히 요즘 말로 ‘가성비’가 좋은 셈이다. 물론 곤돌라를 타고 산머리에 쉽게 올라서는 덕유산이 한 수 위지만, 산행의 기분 또한 느끼고 싶다면 함백산이 최고다. 서울에서 차로 3시간 이상을 부지런히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이지만, 그래도 바다 건너 제주까지 가야 만날 수 있는 한라산보다는 가깝고, 태백산보다는 낮으니 눈꽃산행지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강원도 태백의 제설 수준은 전국 최고를 자랑한다. 강원도 일부 지역은 늦으면 5월까지 눈이 내려 봄에도 설산을 만끽할 수 있다.


함백산의 원래 이름은 대박(大朴)산. 조선 영조 때 실학자인 신경준이 저술한 ‘산경표’에 대박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산경표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어 나간 전국의 산맥 분포표다. 대박은 태백(太白)ㆍ함백(咸白)과 함께 ‘크게 밝다’라는 의미. 태백의 진산이 바로 함백산이다. 한반도 등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정상에서 사방으로 펼쳐지는 드넓은 풍경과 더불어 눈 덮인 겨울에 더욱 어울리는 이름이다.

함백산 산행은 만항재~함백산 정상~중함백~은대봉~두문동재(7.68km)로 이어지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다. 성인 남자라도 예닐곱 시간을 꼬박 걸아야만 완주가 가능하다. 함백산을 처음 만난 이들도 해발 1500m가 넘는 높이에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산행 들머리가 함백산 정상 인근 해발 1000m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실제 올라야 할 산의 높이가 불과 400m가 채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마저도 힘들다면, 만항재~함백산 정상(약 3km)까지 1시간 남짓한 코스만 다녀와도 좋다. 만항재에서 함백산 정상까지의 고도 차는 불과 243m. 일반적인 산행보다 거의 힘들이지 않고 정상에 닿을 수 있다. 다만, 정상을 앞두고 일부 구간에서 코가 땅에 닿을 만큼 된비알(몹시 험한 비탈)이 이어진다. 만항재 아래쪽에 함백산 등산로 들머리가 있다.

만항재에서 태백선수촌 방향으로 가다 보면 나오는 KBS 중계소 입구부터 함백산 정상까지는 약 1km에 불과하다.
◇눈꽃 따라 태백산맥 가장 높은 곳에 서다

함백산 정상 등산로
최단거리 산행코스도 있다. 1시간 정도 오르면 함백산 정상을 밟을 수 있다. 만항재에서 태백선수촌 방향으로 가다 보면 KBS중계소 입구다. 여기에 차를 대고 오르면 정상까지 약 1km. 제법 가파르지만 넉넉잡아 1시간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장시간 산행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성비 갑’이다.

본격적인 산길로 들어선다. 입구는 의외로 길이 넓다. 산 정상에 방송 송신 시설이 있어서다. 임도를 따라가면 길이 두 갈래로 나눠진다. 왼쪽은 임도가 계속 이어지고, 오른쪽은 정상까지 가는 등산로다. 등산로로 들어서면 숲길이 이어지면서 오르막 시작이다. 정상까지 짧은 구간에서 고도가 270m가량 높아지는 길. 두어 차례는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가파르다.

그래도 내린 눈 위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뽀득뽀득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산허리를 이어지던 길은 중간에 마련된 쉼터를 지나면 본격적인 산길로 접어든다. 갑자기 좁아지고, 가팔라진 등산로 탓에 걷던 이들의 걸음도 더뎌진다. 차곡차곡 걸음을 쌓아 가다 보면 평지나 너른 공간이 나온다. 철쭉이 만발한 봄에 이곳을 지났다면, 분명 천상화원이라는 표현을 썼을 터. 대신 잎갈나무와 떡갈나무 등 키 높은 나뭇가지마다 눈이 소복소복 쌓였다. 여기서 정상까지는 불과 100여m에 불과하다. 길은 짙은 구름에 가려 끝이 보이지 않는다. 편한 걸음으로 천천히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 서릿발을 뒤집어쓴 정장석이 정상에 도착한 산행객을 반긴다.

함백산 정상에서 바라본 눈꽃 풍경


정장석 아래 은대봉으로 향하는 길에는 주목이 서 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더니, 튼실한 몸통에서도, 어른 허리보다 굵은 가지에서도 1000년의 힘이 느껴진다. 앞으로 2000년, 30000년도 거뜬히 버텨낼 기세다. 멀리 하얀 눈 이고 앉은 백두대간과 겹쳐 보이는 주목의 당당한 모습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정상부터는 하산길이다. 등산로는 중함백~은대봉~두문동재로 이어진다. 두문동재에는 따로 버스 노선이 없다. 미리 태백이나 고한에서 택시를 부르거나, 차량 두대로 한대는 만항재, 다른 한대는 두문동재에 세워 두는 것이 좋다.

함백산 정상에서 바라본 북쪽 백두대간


◇여행메모

△여행팁= 겨울 산에 오를 때는 무엇이든 넉넉하게 준비하는 게 좋다. 아이젠과 스패츠, 등산스틱은 기본이다. 여기에 방한 준비도 철저히 해야 한다. 복장은 레이어링(Layering)이 기본이다. 두꺼운 외투 한 벌보다 보온과 방풍 기능이 있는 얇은 옷 2~3벌을 겹쳐 입는 게 좋다는 이야기다. 장갑도 마찬가지다. 겨울 산행에서는 더워지기 전에 벗고, 추워지기 전에 입고, 배고프기 전에 먹고, 목마르기 전에 마셔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함백산에서는 취사가 불가하니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충분히 담아가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함백산 정상에서 바라본 정선 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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