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사람은 북극하면 눈 덮인 빙하와 그 위를 거니는 하얀 북극곰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미국 해군은 올해 초 발간한 북극 전략 보고서를 ‘파란 북극’(A Blue Arctic)이라고 명명했다. 파란 북극이라니? 이는 북극이 더이상 얼음으로 뒤덮인 미지의 세계가 아니며 바닷물이 넘실대는 보다 가기 쉬운 곳이 되었다는 의미다.
‘파란 북극’이 암시하듯 북극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곳이다. 북극에서는 전 세계 평균의 두 배 이상의 속도로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 일 년 내내 얼음에 덮여 있던 영구동토는 이제 여름에는 땅거죽을 드러내고 풀이 자라는 땅이 되었다. 2030년경 여름에는 북극해 안에서 사실상 얼음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북극의 급격한 기후변화는 지구 전체의 기상 이변을 가속화하고 생태계에도 재앙 수준의 위기를 초래했지만, 동시에 북극항로 및 막대한 자원 개발과 같은 새로운 경제적 기회도 가져왔다. 이른바 북극의 역설이다. 얼마 전 수에즈 운하에서 발생한 국제 해상운송의 대혼란은 북극해를 통과하는 항로에 대한 관심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북극을 둘러싼 각국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가장 긴 북극 해안선을 보유한 러시아는 북극 개발에 가장 적극적이다.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10%, 총수출의 20%가 북극 지역에서 이루어진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중흥이라는 기치 하에 북극 자원 및 항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북극의 연안국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북극 인접국이라고 지칭하면서 그 어떤 북극 연안국보다 북극 진출에 열심이다. 북극 항로를 빙상 실크로드라 부르며 일대일로 정책과 연계하여 북극권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미국은 그간 북극 진출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북극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고 러·중의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미국은 북극에 새로이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는 북극에 대한 전략적 관여 증대와 함께 기후변화 대응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적극적인 협력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각국의 북극 진출 경쟁은 그간 평화와 협력의 장이었던 북극에 미묘한 긴장감을 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북극이 맞고 있는 위기와 기회는 대립과 경쟁이 아닌 인류 공동의 대응과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서 자원 개발까지 협력 분야는 막대하나 새로운 사고와 접근을 필요로 한다. 이에 따라 북극 연안국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국들이 북극 협력 논의에 나서고 있다. 인도와 싱가포르 같은 열대 국가도 북극이사회에 옵저버로 이미 가입하였다.
우리는 북극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하고 북극 협력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2013년 중국, 일본 등과 함께 북극이사회에 옵저버로 가입하고 기후변화 대응 등 과학연구를 중심으로 참여와 협력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 북극권 국가들과는 양자 북극협의회를 개최하여 협력 사업들을 발굴하고 있다.
그럼에도 비북극권 국가라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북극 협력의 주요 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양자·다자 협력을 긴 안목으로 균형있게 전개해 나가야 한다. 다행히 정부는 최근 극지활동진흥법 제정을 통해 국내 지원 체계도 갖추었다. 기후변화 위기에 적극 대응하고 북극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면서 우리 국익도 확보하는 지혜로운 북극 협력 활동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