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숙 한국여성정책연구원장은 초저출산 초고령화 상황의 해법을 이같이 제시했다.
◇ 유연 근무서 찾은 행복 생산성도 ‘쑥’
올해 1분기 출생아 수는 1년 전보다 6% 넘게 줄어 6만명 수준에 그쳤다. 합계출산율은 0.76명으로 1분기 기준으론 사상 처음으로 0.7명 대로 떨어졌다. 출산율은 1분기에 가장 높고 2, 3, 4분기로 갈수록 낮아지는데 이런 추세라면 올해 합계출산율이 0.6명대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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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30은 요지부동이다. 단발성 지원금을 준다고 하더라도 비혼이나 무자녀 ‘딩크’ 족은 “글쎄?”라는 반응이다. 현금지원금보다 양육부담이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경력을 쌓으면서 내 아이도 내 손으로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상황에선 ‘아이는 부담’이란 인식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지난해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에게 의뢰한 ‘저출산 정책 평가 및 핵심 과제 선정 연구’에 따르면 출산 지원금 정책으로 유의미하게 출산이 늘어난 소득 분위는 소득 상위 21~40%인 4분위뿐이었다. 고소득층인 소득 5분위(상위 20%), 1~3분위(하위 60%)의 출산율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었다. 고소득층은 출산 여부를 결정할 때 현금 지원을 의식하지 않고 저소득층은 현금 지원에도 양육비 부담이 여전히 크다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현금지원이 아닌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구조변화다. 내 아이는 내가 키울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 기업 시스템이 변화해야 한다. 김종숙 원장은 “연구원에서도 오랫동안 관심을 둔 게 노동시장과 가족 간의 연결”이라며 “노동과 가족 안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를 원만하게 양립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근로시간은 그대로 둔 채 정책을 해왔다”고 지적했다. ‘9시 출근, 6시 퇴근’이라는 고정된 출·퇴근 시간에 발이 묶인 채 정책을 만들어오다 보니 육아·돌봄을 위해 제3자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김 원장은 “근로시간과 장소의 유연성을 더 높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지적”이라며 “출퇴근 시, 특히 방학 때 돌봄공백이 많이 생기는데, 근로시간과 장소를 유연하게 함으로써 극복해나갈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게 덜 어려운 세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기업들 사이에선 하루 8시간 근무만 하면, 오전 9시 출근과 오후 6시 퇴근에 얽매이지 않고 출퇴근 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시차출퇴근제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김 원장은 “시차출퇴근제만으로는 어려운 게, 보육시설이나 학교에 아이들을 무한정 둘 수 없다는 점”이라며 “일정 시간은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고 일정 시간은 재택을 함께하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적용하거나, 평상시에 길게 근로하지만 방학 땐 단축근무를 하는 등 근로자의 요구와 사업장 환경이 맞춰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구원에서는 오전 10부터 오후 4시까지를 코어타임하고 나머지 오전 7시~저녁 10시까지를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는 시간으로 두고 있다. 오전 10시 전에 오고 오후 4시 이후에 퇴근하는 건 직원들이 알아서 활용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3년 전부터 도입, 운영하고 있다. 금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가 코어타임이다. 금요일 오후를 자유롭게 일하도록 하고 있다. 김 원장은 “연구기관이라 외부 회의나 대외활동, 출장이 많아서 근로시간에 메어 있게 하진 않는다”며 “과정은 유연하게 하고 성과를 제때 내지 못하면 벌칙을 주는 등 유연하게 하면서 좋은 연구결과를 내게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런 시스템은 2023년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소관 연구기관 평가결과에서 연구분야 우수기관으로 선정, 표창수상이라는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제조업 현장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는 유연 근무가 가능하지만, 제조현장 근로자는 공장의 정해진 생산방식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근무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근무현장에 따른 형평성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앞으로 진전하려면 서로 이해를 조정하면서 사업장 단위로 인사제도도 바꾸고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고용노동부에서 산업현장 컨설팅을 찾아가면서 해주는 걸 시작한다고 하는데, 이런 노력이 지속하면 사례가 쌓여 확산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 전세계에서 성불평한 나라 15등 불명예…이유는
국가성평등지수는 2021년 기준 75.4점이다. 100점 만점이 기준이지만, 2016년(71.3)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70점대에서 머물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젠 유리천장이 깨지지 않았느냐는 얘기도 나오지만, 사회 구조적 성차별이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여성경제활동참가율은 55.6%였다. 정규직 근로자만 보면 여성비율은 39.5%로 더 낮아졌다. 여전히 비정규직 중 여성 비중이 더 높은 것이다. 이렇다 보니 여성 월임금총액은 남성의 66.2%(2022년)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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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은 “우리나라 성평등지수 안에서 개선이 제일 안되는 게 정치과 경제 대표성”이라며 “국회의원 비율도 이번 총선에서 20%(60명)에 그쳤고 경제분야도 개선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어렵다”고 말했다. 그 외 분야는 성평등 인식이 많이 개선됐지만, 이제 어려운 과제만 남았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의 저임금은 경력단절 영향이 크다고 봤다. 연공서열식 임금시스템으로 경력이 단절되면 임금격차가 불가피해지고, 임금이 높은 고위직으로의 여성진출 기회도 적기 때문이다. 그는 “성별에 따른 직무격차를 해소하고 고용 형태도 여성이 좋은 위치로 갈 수 있게 해서 임금 격차를 해소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폭력 피해자중 20세 이하 여성이 21.6%(2021년), 강력범죄(흉악) 피해자 여성비율은 80.4%, 가정폭력여성 피해는 76.1%에 이른다. 성폭력 범죄자는 남성이 95.9%로 가해자 대부분이 남성이다. 여전히 여성이 약자인 상황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여성정책 무용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남성의 역차별 상황 속에서 아직도 여성정책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어떤 분야에서는 정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있고 어떤 분야에선 심각하게 느끼는 경우도 있다”며 “양성평등 정책을 국민이 생활 속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이런 정책의 필요 유무에 대한 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성정책연구원은 25개 정부출연 연구기관 중 7번째로 개원했다. 여성, 양성평등 등의 분야에서 20년 정도 깊이 있는 연구를 해오며 정부정책의 기초를 제공해왔다. 김 원장은 “연구 내용이나 과정이 과거보다 심화하고 결과가 더 확산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며 “정부와 학계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도 충실히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종숙 원장 △1969년 서울 △창문여고, 이화여대 경제학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가족경제학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산업조사실 연구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일자리인재센터 센터장 △대통령비서실 여성가족비서관 △한국여성경제학회 회장